5·18진상조사위, 공개토론회 참여해 새 사실 일부 공개
31사단 61훈련단 11병참선 경비대대, 다수 작전에 투입
부대원 모두가 방위병…"민간인 학살에 앞장선 사실"
윤상원 사망 경위 재확인 등 직권 과제 7개 심의 의결
5·18민주화운동 당시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자들은 시위 진압에 투입된 공수부대원 등 계엄군 뿐만 아니라 사단에 소속된 방위병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방위병들은 광주 도심에서 벌어진 계엄군의 군사 작전에 투입되거나 전남 해남에서 시민들이 벌인 시위 진압에 동원돼 민간인 학살에 가담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20일 오후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국가차원의 5·18진상규명과 이후 방향 모색’ 토론회에 참여했다.
조사위는 토론회 1부 조사경과보고회를 통해 21개 직권과제 심의 의결 진행 상황을 밝히고 진상규명을 마쳤다고 판단된 직권과제 중 일부 새로운 사실을 공개했다.
특히 방위병이 5·18 당시 광주 곳곳에 군인 대신 투입돼 민간인 학살에 앞장섰다는 사실이 조사 결과 최초로 확인됐다. 오늘날의 보충역에 해당돼 병무행정 보조 업무를 도맡아온 이들이 군사 작전에 동원된 셈이다.
당시 방위병을 운용하던 31사단은 산하 61훈련단 11병참선 경비대대를 1980년 5월 23일 광주변전소 탈취 작전에 투입시켰다. 경비대대에 소속된 400여명은 모두 방위병 신분으로 확인됐다.
방위병 투입은 이튿날인 5월 24일에도 이어졌다. 당시 11병참선 경비대대는 광주 외곽 출입을 차단하기 위한 광주톨게이트 봉쇄 작전에도 투입됐다.
뿐만아니라 광주교도소 주변 시위대 접근을 차단하는 방호작전에도 동원되는 등 민간인과 충돌하는 현장에 배치되면서 실제 살상 행위에 가담한 사실이 확인됐다.
전남에서도 시위 진압을 위해 방위병이 투입된 사실이 확인됐다. 31사단 93연대 산하 방위병 200여명은 5월 21일 해남군 우슬재 주변에서 벌어진 민간인들의 시위 진압에 투입돼 살상에 가담했다. 우슬재 주변에서는 최근 5·18 암매장 추정 유해가 발굴돼 현재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조사위는 당시 31사단이 11병참선 경비대대를 의도적으로 투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경비대대가 충정훈련 등 전문적 군사훈련을 받아온데 따라 강경 진압에 능할 것으로 판단해서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날 조사결과보고회에서는 5·18최초 희생자인 김경철 열사와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 등 주요 희생자의 사망 경위가 새로 밝혀지기도 했다.
당초 김 열사는 5월 18일 금남로에서 부상을 입은 뒤 이튿날인 19일 오전 3시 국군통합병원에서 숨졌다고 기록됐으나 조사결과 5월 19일에 폭행에 의한 부상을 입은 뒤 같은날 오후 3시 적십자병원에서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병원 도착 당시 이미 숨져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광주 동부경찰서를 경유한 사실도 드러났다.
조사위는 김 열사의 시신이 동부서를 경유한 점에 따라 이를 계엄당국이 첫 사망자를 은폐하려한 정황으로 판단하고 있다.
윤 열사의 경우 5월 27일 옛전남도청에서 벌어진 최후항전 당시 자상에 의해 숨졌다고 기록돼왔으나 최근 진술 등을 종합한 결과 복부 총상에 의해 숨진 것으로 정정됐다.
조사위는 이처럼 사망 경위가 재확인된 경우를 9건으로 보고 있다.
이밖에 조사위는 광주도심과 전일빌딩 주변에서 벌어진 헬기사격 등 7개 과제를 전원위원회에 심의의결해 진상규명을 마쳤다. 특히 헬기사격의 경우 정황 증거를 종합했을 경우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됐다.
조사위는 오는 26일까지 21개 직권과제를 모두 심의 의결, 활동을 종료한 뒤 내년 6월 대정부권고안이 포함된 국가보고서를 발간하고 정식 보고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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