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47회 지적재산권 침해…글 구성 바꾸고 수정
1심 벌금 700만원, 저작인격권 침해는 무죄
2심서 저작인격권 침해 유죄…벌금 1000만원
대법 “피해자 사회적 가치 침해 위험 있어 유죄”
전문가의 글을 허락 없이 내 것처럼 게시했다면, 저작인격권 침해로 인한 저작권법 위반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달 30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한다고 22일 밝혔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건, 저작인격권 침해로 인한 저작권법 위반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피고인 A씨는 한 연구소 소장인 피해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글과 연재글을 무단으로 복사해 자신의 게시판에 게시했다. 이 같은 지적재산권 침해 행위는 총 47회에 달했다. 또 일부 게시글의 경우 마치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자신의 실명을 표시했고, 일부 게시글은 내용을 더하거나 구성을 변경해 게시했다.
1심에서는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범행의 기간, 횟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죄질이 좋지 않고, 피해자의 피해가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점 등이 불리한 정상으로 작용했다.
다만 저작인격권(저작물 창작으로 인한 권리) 침해로 인한 저작권법 위반은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저작인격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별도로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해야 한다”며 “저작인격권을 침해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추정하는 합리적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작인격권을 침해하는 글이 그 안에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도 않다”고 덧붙였다.
2심에서는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벌금을 1000만원으로 상향했다. 1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저작인격권 침해로 인한 저작권법 위반도 유죄로 본 것이다.
2심 재판부는 “A씨는 무단으로 피해자의 게시글이나 연재글 등 저작물에 그 내용을 부가하거나, 구성을 변경해 마치 자신의 저작물인 것처럼 게시했다”며 “해당 행위는 피해자의 저작물에 대한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 등 저작인격권 침해 행위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또 “이런 A씨의 침해행위로 저작자인 피해자의 명예가 훼손됐기 때문에 저작인격권 침해로 인한 저작권법 위반죄는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에서도 A씨의 상고를 최종 기각하며 저작인격권 침해로 인한 저작권법 위반죄를 유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해자는 전문지식 등을 바탕으로 다수의 글을 게재하면서 자신의 학식 등 인격적 가치에 대한 긍정적인 평판을 누리고 있었는데 피해자가 게시를 중단하자, 피고인은 이번 기회에 피해자의 게시글을 이용해 자신도 다양한 주제에 대한 상당한 식견이 있는 사람처럼 행세하고자 저작인격권 침해 행위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는 성명표시권을 침해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마치 피해자의 글이 A씨의 것처럼 인식될 수 있었다”며 “피해자로서는 진정한 저작자가 맞는지, 나아가 기존에 피해자가 얻은 사회적 평판이 과연 정당하게 형성된 것인지 의심의 대상이 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A씨가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해 게시한 글로 인해 A씨의 게시글에 나타난 개인 주관이나 오류가 원래부터 피해자에게 존재했던 것으로 오해될 수 있고, 이에 따라 저작자인 피해자의 전문성이나 식견 등에 대한 신망이 저하될 위험도 없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마지막으로 “결국, A씨는 피해자의 저작인격권인 성명표시권과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해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침해될 위험이 있는 상태를 야기함으로써 저작자인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저작인격권 침해로 인한 저작권법 위반죄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대법원에서 판단한 사례가 없었다”며 판결 의의를 설명했다.
또 “저작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인해 저작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침해될 위험이 있으면 성립하고, 저작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침해할 위험이 있는지는 객관적인 제반 사정에 비추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하면서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한 첫 대법원 판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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