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경기 수원시 영통구의 한 장례식장. 22일 수원역 버스환승센터에서 발생한 사고로 숨진 A 씨(77)의 빈소에서 A 씨 남편이 안경 너머로 연신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그는 “아내가 집을 나서길래 배웅하면서 ‘날이 추우니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말했는데 그게 마지막 대화일 줄은 몰랐다”며 오열했다. 그는 결혼 50주년을 맞는 31일 아내와 함께 경북 영덕군에 내려가 홍게를 먹을 계획이었다고도 했다.
이날 빈소에는 A 씨의 남편과 큰 아들 내외, 둘째 아들 등 가족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A 씨의 둘째 아들(47)은 “사고 소식을 듣고 믿기지 않아 어머니 연락처로 수십 번 전화했지만 끝내 연결이 안 됐다”며 황망해했다. A 씨와 함께 살고 있다는 둘째 아들은 “평소 아침을 잘 챙겨먹지 않은데 사고 당일 어머니가 손수 뭇국을 끓여 아침을 차려주셨다”며 “밥 잘 먹었다는 인사가 어머니와의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몰랐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또 “올 추석 연휴에 형 부부가 부모님을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는데 다른 일정으로 함께하지 못한 게 한이 된다”며 가슴을 쳤다.
유족들에 따르면 A 씨는 묵묵히 자녀를 뒷바라지하며 가족을 묶어주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고 한다. 사고 당일 A 씨는 경기 화성시 자택에서 나와 평소 다니던 수원 팔달구의 병원에 가던 길이었다고 한다. 한 유족은 “오후 1시 25분경 버스환승센터에서 버스를 갈아타려고 인도에 있다가 돌진한 버스에 치었다고 들었다”며 “상태가 참혹하다며 시신도 보여주지 않더라”고 하소연했다. A 씨는 25일 오후 경기 화성시의 한 추모공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당시 사고로 중상을 입었던 70대 여성은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인공 호흡을 위해 기도 삽관까지 할 정도로 위독한 상태였지만 점차 의식을 회복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사고로 이 여성을 포함해 2명이 중상을 입고 13명이 경상을 입었다.
사고를 수사 중인 경기수원서부서는 50대 여성 버스 기사 김모 씨의 진술과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토대로 김 씨의 운전 미숙에 의한 사고로 보고 있다. 김 씨는 사고 직후 경찰조사에서 “승객이 거스름돈이 안 나온다고 해 확인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버스가 움직여 다시 앉았고, 당황해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버스 기사 김 씨가 정신적 충격으로 입원해 아직 2차 조사는 진행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 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 혐의(치사)로 입건해 조사 중이다.
수원=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수원=이경진 기자 lk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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