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폐지수집 노인 실태조사
“생계비 벌려고 폐지 주워” 55%
시급 계산땐 최저임금의 13%뿐
전국 4만여명… 정부 “맞춤 복지”
“우리 나이에 성탄은 무슨…. 애들도 바쁘고. 한 푼이라도 벌려면 나와야지.”
26일 아직 동이 틀 기미조차 없는 새벽 서울 광진구 주성자원 앞. 도로가 고물상 앞으로 리어카를 끄는 노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캄캄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은 위태롭게 노인들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고물상 철문을 지난 노인들이 힘에 부친 듯 리어카를 털썩 내려놓았다.
조인열 씨(79)는 크리스마스였던 전날 저녁 식당가를 돌며 리어카에 박스를 차곡차곡 쌓아 모았다고 했다. 조 씨가 이렇게 모은 폐지의 무게는 198kg. 리어카 무게까지 합치면 270kg에 이르는 짐을 끌고 왔지만 그가 손에 받아 든 건 7900원뿐이었다. 조 씨는 지난주 폐지를 줍다 빙판길에서 넘어져 무릎을 다쳤지만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티는 중이다. 조 씨는 “병원에 꼭 가 보시라”는 기자의 말엔 끝내 대답하지 않은 채 빈 리어카를 챙겨 고물상을 나섰다.
● 월급 15만9000원…최저임금 13%
이날 고물상이 문을 열기도 전부터 철문 앞을 지키고 서 있던 이선규 씨(66)는 전날 종일 돌아다녀 두 대 분량의 폐지와 고철을 주웠다. 다리에 장애가 있는 이 씨는 원래 엿장수 일을 했으나, 사람들이 더 이상 엿을 사지 않아 3년 전부터 폐지를 줍고 있다고 했다. 그는 “폐지 가격이 너무 떨어져 힘들다”며 “집에 가서 잠깐 자고 오전 10시쯤 다시 나와 폐지를 주울 것”이라고 말했다. 폐지를 팔러 나온 김병년 씨(73)는 “한때 kg당 200원씩 하던 폐지가 이젠 kg당 40원까지 떨어졌다”며 한숨을 지었다. 전날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리어카 한가득 폐지를 싣고 가던 반병권 씨(81)는 “새벽부터 모았는데 1만 원 조금 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폐지 수집 노인 1035명을 대상으로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올해 수행한 실태조사 결과를 28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폐지 수집 노인들은 하루 평균 5.4시간씩 주 6일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월평균 15만9000원을 벌고 있었다. 시급으로 따지면 올해 최저임금 9620원 대비 13%에 불과하다.
폐지 수집 노인 10명 중 8명 이상은 경제적 목적 때문에 폐지를 줍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참여한 노인 중 과반(54.8%)은 생계비 마련을 위해 폐지를 줍는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85.3%가 가장 필요한 지원으로 “현금 지급 등 경제적 지원”을 꼽았다.
폐지 수집 노인들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 상태도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폐지 수집 노인 중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21.4%에 불과했다. 특히 폐지 수집 노인 중 39.4%가 우울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전체 노인 대상 조사 결과(13.5%) 대비 2.9배에 이르는 수치다.
● 내년 1분기 폐지 수집 노인 전수조사
복지부는 이러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폐지 수집 노인 지원 대책을 28일 발표했다. 지방자치단체들과 함께 전국 4282개 고물상에 오는 폐지 수집 노인 전체를 조사하는 방식으로 내년 전수조사에 나선다는 것이 이번 대책의 골자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앞선 실태조사를 통해 전국에 폐지 수집 노인이 약 4만2000명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는 내년 3월까지 이렇게 전국 폐지 수집 노인들의 명단을 확보한 뒤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돈을 벌고 싶어 하는 노인들에게는 폐지 수집보다 안전하면서도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다른 노인 일자리 사업을 소개하고, 개인별로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이 있는지 확인해 연결해준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폐지를 수집하고자 하는 노인들에 대해선 월 약 20만 원을 월급처럼 지급하거나 주워 온 폐지의 양에 비례해 지원금을 주는 등의 지원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김성훈 주성자원 대표는 “무작정 어르신들에게 ‘폐지 줍지 말라’고 하는 건 오히려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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