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시흥시 ‘군서미래국제학교’
전교생 중 37%가 다문화 학생… 베트남-중국 등 13개국서 모여
초중고 통합해 교육 효과 극대화… 해외 학교와 연계 프로젝트 수업
학년별로 다양한 언어 습득 가능… “대화 나누다보면 편견 사라져요”
지난해 12월 18일 경기 시흥시의 공립 대안학교인 군서미래국제학교 5학년 1반 교실. 다음 날 지역 마을 방송국 유튜브 방송에 출연하는 ‘군터뷰(군서미래국제학교 인터뷰)’ 팀의 마지막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저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다닐입니다.”
아직 한국어가 서툰 루캬노프 다닐 군(12)이 또박또박 자기소개를 이어갔다. 이어 베트남에서 온 딘티아인트 양(12)은 수줍은 목소리로 자신이 만든 인터뷰 영상을 소개했다. 두 사람이 대사를 놓치면 조장인 남소민 양(12)이 대본에서 대사의 위치를 짚어 줬다.
5학년 1반은 전체 학생 15명 중 4명이 다문화 학생이다. 수업 구성도 색다르다. 지난해 2학기 첫 수업 주제는 ‘인구’였다. 팀 과제로 수도권 과밀화와 지방소멸 문제를 다뤘다. 중국, 베트남,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학생들은 각 나라의 인구 및 주거 문제를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다. 학급 담임인 최윤정 교사는 “이민 생활의 어려움과 모국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들의 편견이 사라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지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 14개국 학생 어울리는 다문화 학교
군서미래국제학교는 폐교한 옛 군서중을 리모델링해 2021년 공립 대안학교 형태로 문을 열었다. 한국인 학생과 다문화 학생이 함께 어울리는 ‘초중고 통합형 다문화 국제학교’다. 전교생 366명 중 136명(37.2%)이 중국, 베트남 등 13개국에서 온 다문화 학생이다.
경기도교육청은 향후 다문화 학생이 더 늘어날 상황에서 ‘학교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문제 인식을 갖고 이 학교를 설립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국내 초중고 다문화 학생은 2013년 5만5780명에서 지난해 18만1178명으로 10년 새 약 3.2배로 급증했다. 전체 초중고생의 3.5%에 달한다.
군서미래국제학교는 지난해 고교 과정도 개설했다. 한 울타리에 초중고가 모두 있다 보니 초등생과 중학생이 어울림 시간을 갖는 ‘하우스’ 프로그램 등 여러 학년이 함께하는 활동이 많다고 한다. 이 학교 박정은 교사는 “초등부터 고교까지 교육 과정이 연계되면서 학생들의 안정감도 높아졌고, 교육적 효과도 커졌다”고 말했다.
미얀마 국적의 수피아이 양(18)은 지난해 3월 이 학교로 전학 왔다. 역사나 사회 수업은 여전히 어렵지만 한국어는 이미 수준급이다. 수피아이 양은 “이전 학교에선 주로 같은 문화권 학생들끼리 어울렸는데, 여기선 한국 친구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권 친구들과 사귀게 되면서 한국어가 빨리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엔 수업과 여행을 겸해 친구들과 태국을 다녀오기도 했다. 태국 학교와 연계한 해외 프로젝트 수업의 일환이었다.
● 다양한 언어 배우며 국제감각 키워
군서미래국제학교는 다문화 학생들에게 한국어 습득만을 강요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온 이해가 양(12)은 3교시에 중국어 교실로 옮겨 수업을 들었다. 행성과 항성의 개념, 계절별 별자리 등 일반 초등학교의 과학 교과 내용이었다. 수업에선 한국어보다 중국어 대화가 더 많이 오갔다. 조주연 교사는 한국어로 최대한 쉽게 설명한 뒤, 이 양이 어려워하는 용어를 중국어로 다시 설명했다.
중국에서 온 학생이 중국어 교실에서 수업 듣는 모습이 다소 의아해 보일 수 있지만 조 교사는 “다문화 학생들에게 너무 한국어만 강요하면 학습 측면에서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언어 스트레스 때문에 학업에 대한 흥미까지 잃지 않도록 편한 모국어로도 수업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다문화 학생 중에는 한국어 실력이 부족할 뿐 학습 능력은 뛰어난 학생이 적지 않다. 군서미래국제학교는 이들이 자신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한국 생활에 적응하도록 돕고 있다. 학생에게 한국어를 억지로 가르치기보다 스스로 필요에 의해 한국어를 익히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 양도 중국어 수업 덕분에 학교에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양은 “중국에서처럼 무조건 암기하는 게 아니라, 게임도 하고 주도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어 재미있다. 선생님과 친구처럼 지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 학교 다문화 학생들은 모국어와 한국어뿐 아니라 다양한 언어를 배우는 기회를 갖는다. 영어와 중국어는 초1부터, 러시아어와 베트남어는 초5부터 배울 수 있다. 실제로 친구들과 소통하고 싶어 러시아어를 배우는 한국 학생들도 있다. 박 교사는 “다양한 국적의 학생이 편견 없이 어울리고,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게 이 학교의 교육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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