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개편, 속도 낸다…‘주69시간 역풍’ 지울까

  • 뉴시스
  • 입력 2024년 1월 4일 14시 00분


정부, '2024년 경제정책방향' 발표…노동개혁 지속
올해 상반기께 근로시간 제도개편 보완방안 마련
주52시간제 틀 유지, 일부 업종 한해 유연화 골자
노사정 대화 '관건'…주69시간 불씨에 총선도 변수
임금격차·이중구조 해소 속도…'노사 법치' 지속도

집권 3년차에 들어선 윤석열 정부는 올해 ‘근로시간 제도개편 보완방안’ 마련 등 노동개혁 과제를 보다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주 최대 69시간’ 논란으로 역풍을 맞은 정부는 현행 ‘주52시간제’ 틀은 유지하되 일부 업종과 직종에 한해 유연화하는 안을 올해 상반기에 내놓겠다는 계획이지만, 노사정 사회적 대화와 총선 변수 등으로 난항도 예상된다.

◆정부, 올해 상반기 ‘근로시간 제도개편 보완방안’ 마련

정부가 4일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을 보면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실시한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거쳐 올해 상반기 중 ‘근로시간 제도개편 보완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는 고용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개편 방향’의 후속 조치다.

앞서 지난해 3월 정부는 1주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는 내용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입법 예고한 바 있다. 일이 많을 때 집중적으로 일하고 쉴 때는 길게 쉬자는 취지다.

그러나 이 경우 특정 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된다는 계산이 나오면서 ‘장시간 근로’, ‘공짜 야근’ 논란이 불거졌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이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며 보완을 전격 지시하면서 재검토에 들어갔다.

이에 고용부는 노사 및 국민 60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며, 그 결과를 반영해 ‘주52시간제 틀은 유지하되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일부 업종과 직종에 한해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개편 방향을 잡았다.

다만 어떤 업종과 직종에 한해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할 것인지 등 세부 방안은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거쳐 구체화하기로 했다. 정부의 일방적인 방식이 아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정부는 올해 구체적인 보완방안 마련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번 경제정책방향에서 “우선 적용 업종·직종, 연장근로 관리단위 및 상한 등에 대한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도 신년사에서 “급속히 변화하는 산업 수요에 대응하려면 노동시장이 유연해야 한다”며 “유연근무, 재택근무, 하이브리드 근무 등 다양한 근무 형태를 노사 간 합의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노사정 대화 ’관건‘…’주69시간‘ 불씨에 총선도 변수

관건은 노사정 사회적 대화와 합의 여부다.

산하 노조 간부에 대한 경찰의 강경 진압 사태로 지난해 6월 사회적 대화 참여 중단을 선언한 한국노총이 개편방향 발표 직후 전격 복귀하면서 대화에 물꼬를 텄지만, 불안한 모습은 계속 감지되는 모습이다.

우선 보완된 개편 방향에도 ’주69시간‘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이다.

’모든 업종‘에서 ’일부 업종과 직종‘으로 범위가 좁혀지긴 했지만, 이번 개편안은 정부가 지난해 3월 발표한 내용과 사실상 다르지 않다. 일부를 시작으로 다른 업종에 주52시간제 유연화가 확산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에 노동계에서는 “정부가 대국민 설문조사와 노사정 대화를 명분으로 결국 주52시간제 유연화와 노동시간 개악을 재추진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 12월 노사정 대표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였지만, 노사정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배포한 보도자료 일부 내용에 한국노총이 반박하면서 엇박자를 내기도 했다.

경사노위는 “산업전환, 계속고용, 근로시간 등 산적한 노동 현안에 대한 조속한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밝혔지만, 한국노총은 “근로시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바 없으며 향후 의제화되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지난해 말 대법원이 연장근로시간 위반 여부를 ’1일 8시간 초과‘가 아닌 ’1주 40시간 초과‘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향후 논의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고용부는 “이번 판결은 바쁠 때 더 일하고, 덜 바쁠 때 충분히 쉴 수 있도록 근로시간 유연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합리적인 판결”이라며 제도 개편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노동계는 ’노동 지옥‘이 열린 것이라고 주장하며 반발하고 있다.

다만 100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은 변수다. 워낙 민감한 사안인 만큼 사실상 총선 전까지는 근로시간 개편안을 확정하지 못한 채 논의가 공전만 반복할 수 있다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임금격차·이중구조 해소 속도…’노사법치‘ 지속 추진도

한편 정부는 올해 근로시간 제도개편 뿐 아니라 임금체계 개편, 이중구조 개선대책 마련 등에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를 줄이고 오래 일한 근로자가 임금을 많이 받는 ’연공성‘을 완화하기 위해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해왔다.

또 2022년 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을 계기로 조선업을 비롯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해 전문가 및 정부 관계부처 등으로 구성된 ’상생임금위원회‘를 꾸려 임금격차 해소 등 관련 방안을 논의 중이다.

정부는 상생임금위원회가 조만간 권고문을 발표하면 이를 토대로 경사노위에서 개선 방안을 구체화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지난해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 등에서 승기를 잡은 정부는 올해도 불법 노조 전임자 운영, 사업주의 임금체불 등 불법·부당행위 근절과 노사 법치주의를 지속 추진할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노동개혁은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하며, 그 출발은 노사법치”라며 “법을 지키는 노동운동은 확실하게 보장하되, 불법행위는 노사를 불문하고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아울러 노동시장 변화에 대응한 고용보험 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실업급여 제도는 ’노동시장 참여 촉진형‘으로 제도 개선에 다시 속도를 낼 예정이다.

지난해 당정은 임금보다 많은 역전현상, 반복수급, 고용보험기금 적자 등을 들어 하한액 폐지 등 실업급여 개편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일명 ’시럽급여‘ 발언 논란으로 역풍을 맞으면서 관련 논의는 현재 답보 상태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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