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나체 사진을 제작 의뢰해 보관한 대학생을 범행 당시에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무죄 판단을 내렸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지난달 14일 음화제조교사·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모 씨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이 씨는 2017년 4월부터 11월까지 신원을 알 수 없는 이에게 SNS를 통해 여성 지인들의 얼굴이 합성된 나체 사진을 17차례 의뢰해 제작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의뢰 과정에서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 지하철과 강의실 등에서 6차례 여성들의 신체를 불법 촬영한 혐의도 받았다.
범행은 이 씨가 휴대전화를 잃어버리면서 발각됐다. 습득자가 주인을 찾기 위해 휴대전화를 열었다가 합성 사진을 확인해 이를 피해자에게 건넸고, 피해자는 2017년 12월 경찰에 휴대전화를 제출하면서 이 씨를 고소했다.
당초 이 사건은 경찰이 수사했으나 이 씨가 군에 입대하면서 군검찰 소관으로 넘어갔다. 군사법원은 대부분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1·2심 모두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형법 244조는 문서, 도화, 필름 등 ‘음란한 물건’을 제조하는 행위를 금지하는데 기존 대법원 판례는 이 씨가 제작한 합성 사진과 같은 컴퓨터 파일을 음란한 물건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대법원은 음화제조교사죄로 이 씨를 처벌할 수 없다고 보고 원심의 유죄 판결을 파기했다.
이 씨의 범행은 컴퓨터 합성 기술이 발생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범죄 유형으로 이른바 ‘지인 능욕’이라고 불린다.
2020년 3월에야 성폭력처벌법 14조의2(허위영상물 등의 반포 등) 조항이 신설돼 처벌할 수 있게 됐지만 법이 생기기 전 벌어진 이 씨의 범행에는 적용하지 못했다.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이 씨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아 불법 촬영 혐의도 사실상 처벌이 어렵게 됐다. 경찰은 별도의 압수·수색영장 없이 피해자가 제출한 이 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하고 전자 정보를 유출했고 이 씨에게 참여 기회를 보장하지 않았다.
사건이 군검찰로 넘어간 뒤 2018년 11월 군검사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불법 촬영 사진을 다시 수집했으나 대법원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 씨에 대한 재판은 서울고법에서 다시 열린다. 새로운 증거가 제출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 씨는 피해자 한 명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만 처벌받고 나머지 혐의는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의 유명 대학에 다니던 이 씨는 이 사건이 불거지면서 학교에서 퇴학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구속 상태로 재판받다 2020년 4월 대법원의 직권 구속취소 결정으로 석방됐다.
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polaris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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