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정책인가, 저소득 지원책인가…아직도 조건 따지는 한국 [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5일 14시 00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아이돌봄 사업을 통해 지원된 아이돌보미가 아이를 돌보고 있는 모습. 뉴시스
아이돌봄 사업을 통해 지원된 아이돌보미가 아이를 돌보고 있는 모습. 뉴시스


정초에 지인으로부터 ‘축하 문자’가 당도했다. 올해부터 아이돌봄 사업 지원 혜택이 늘어난다며 잘되었다고 관련 기사 링크를 보내온 것이었다. 기자는 각 가정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정부가 돌봄 인력(아이돌보미)을 제공하는 아이돌봄 서비스를 10년째 이용하고 있다. 반가운 마음으로 기사를 클릭했지만, 곧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자녀 둘 이상이면 아이돌봄 이용료를 추가로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소득이 어느 수준 이하여야만 혜택 대상이 됐다.

비슷한 일이 지난해에도 있었다. 셋째 이상만 전액 받을 수 있던 다자녀 대학 등록금 지원을 이제 첫째, 둘째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대통령실의 발표가 나온 날이었다. 본래 세 자녀 이상인 가구에서 셋째 이상만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을 수 있었는데, 앞으로 그 대상이 첫째와 둘째로 확대돼 수혜 가정에서 대상자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도 몇몇 지인들이 ‘좋겠다’며 문자를 보내왔는데, 사실 기자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상에도 소득 제한이 있어 애초 기자는 등록금 지원 대상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유정복 인천시장이 1일 남동구 가천대길병원 신생아실을 찾아 ‘1억 플러스 아이드림‘ 첫 수혜 신생아를 축하하고 있다. 인천시 제공
유정복 인천시장이 1일 남동구 가천대길병원 신생아실을 찾아 ‘1억 플러스 아이드림‘ 첫 수혜 신생아를 축하하고 있다. 인천시 제공


● 맞벌이, 소득 높아 지원 못 받는 아이러니
지난해 말 인천시가 파격적인 발표로 눈길을 끌었다. ‘아이 낳으면 무조건 1억 원.’ 인천에서 자라는 아이가 18세가 될 때까지 총 1억 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1억 플러스 아이드림’ 사업을 시작한다는 발표였다. 올해부터 시행에 들어가 그 첫 대상자도 나왔다. 1억 원을 단번에 주는 건 아니고 생애 단계에 걸쳐 나눠 지원하는 것이긴 했지만, 인천에 거주한다면 누구나 ‘천사 지원금’과 ‘아이꿈수당’을 포함해 1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내용은 분명 의미 있는 것이었다. 아이의 상황과 무관하게 그저 해당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라면 지원받을 수 있는 것, 즉 출산과 육아라는 행위만으로 온전히 혜택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다.

반면 정부의 저출산 대책 가운데는 조건이 따라붙는 게 많다. 특히 출산과 육아를 지원한다면서, 특정 소득 이하여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는 식이다.

아이돌보미를 예로 들어보자. 어린이집, 유치원 같은 기관이 아닌 가정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정부가 돌봄 인력, 아이돌보미를 제공하는 아이돌봄 사업의 경우 소득 수준에 따라 정부가 지원하는 폭이 다르다. 한데 소득이 기준 중위소득 150%를 넘는 가구라면 전혀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아이돌봄에 들어가는 비용을 온전히 자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맞벌이의 경우 기준을 적용할 때 가구소득의 25%를 공제하긴 하지만, 그래도 일선 중산층 가구 가운데는 기준을 넘는 가구가 적지 않을 것이다. 중위소득 150%를 초과하는 인구는 전체 4분의 1에 달한다.

맞벌이 가구야말로 아이돌봄 인력이 가장 필요한 가구이고 애초 아이돌봄 사업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여성의 경력 단절 부담을 줄이는 것인데(아이돌봄 사업 주관부처도 여성가족부다), 정작 맞벌이를 하면 소득이 좀 많단 이유로 지원에 탈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아이돌봄 자부담 비용은 가파르게 상승해 2024년 기준 아이돌봄 영아종일제(월 200시간)를 이용한다면 월 230만 원 넘는 돈을 내야 하게 됐다. 중위소득 150%를 초과하는 가구라 해도 결코 가벼운 금액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한국장학재단 서울센터에 국가장학금 관련 안내문이 놓여 있는 모습. 뉴스1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한국장학재단 서울센터에 국가장학금 관련 안내문이 놓여 있는 모습. 뉴스1


● 다자녀 가구도 못 받는 저출산 지원
다자녀 대학 등록금 지원은 어떨까. 현재 대학 등록금 지원 기준은 소득 구간 10구간 중 8구간 이하다.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인지 한 언론사가 분석한 기사가 있다.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기반으로 5인 이상 가구 보유 평균 실물자산, 금융자산, 부채, 평균 소득(차량 소유 가정)을 가지고 대학 등록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보았는데, 그 결과 ‘평범한 5인 가구’라면 등록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소득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등록금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인 가구를 소득 순서대로 줄을 세웠을 때 그 중간값인 ‘중앙값’으로 분석해도 마찬가지였다. 쉽게 말해 다자녀 대학 등록금 지원은 평균보다 소득 수준이 낮은 집이어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식으로 소득이 어느 수준 이상 되는 가구라면 누릴 수 없는 저출산 지원책이 적지 않다. 그럼 그런 정책을 저출산 지원책이라 해야 할까, 저소득층 지원책이라 해야 할까? 특정 계층을 위한 저출산 지원책인 걸까?

출산과 육아에 들어가는 비용은 웬만한 중산층 가구에도 결코 가벼운 금액이 아니다. 아이 돌봄 이용, 대학 등록금은 중산층 가구에서도 1인 월 소득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안 그래도 큰 금액인데 ‘받을 줄 알았다가 못 받으면’ 그 상실감과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크다. 비대상자의 출산 의지를 도리어 꺾어 정책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

신원식 국방부장관이 21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다자녀 군인 및 군무원 가족 초청 격려행사에 참석해 맹준영 상사 가족과 함께 기념촬영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신원식 국방부장관이 21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다자녀 군인 및 군무원 가족 초청 격려행사에 참석해 맹준영 상사 가족과 함께 기념촬영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도 키울 수 있다. 종종 자녀를 셋 이상 가진 맞벌이 부모들을 만날 때가 있는데, 너나 할 것 없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아이 셋 이상이면 나라에서 지원 많이 받을 거라 부러워하는데, 실상 받지 못하는 혜택이 많아 답답하고 화가 난다”는 말이다. 아이들 모임을 통해 알게 돼 친하게 지냈던 워킹맘이 있다. 그와 남편은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부부로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그들 역시 각종 소득 제한에 걸려 큰 혜택들을 누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맞벌이하니 본의 아니게 가구소득이 높아져 아이가 셋인데도 받을 수 있는 건 전기, 수도, 공공주차장 같은 요금 할인뿐”이라며 “다자녀 혜택이라고 허울만 좋고 실속은 없다. 역시 우리 정부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라고 덧붙였다.

● 출산율 1.3명 日도 조건 없이 지원하는데…
지난달 발표된 일본의 저출산 대책이 발표됐다. 한국에서 화제가 된 것은 대학 등록금 관련 지원책이었다. 일본 정부는 소득에 상관 없이 자녀 세 명 이상 가구에 2025학년도부터 대학과 고등전문학교 등록금, 입학금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국공립대 연간 약 54만 엔(약 490만 원), 사립대 약 70만 엔(약 630만 원) 등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기준 1.26명이었다.

김영환 충북지사가 4일 도청 브리핑룸에서 충북 출생아 수 증가와 각종 정책 추진과 관련한 설명을 하고 있다. 충북도 제공
김영환 충북지사가 4일 도청 브리핑룸에서 충북 출생아 수 증가와 각종 정책 추진과 관련한 설명을 하고 있다. 충북도 제공
반면 같은 해 출산율 0.78명을 기록한 우린 어떤가. “올해는 정말 통과될 줄 알았거든요. 대통령실, 정부, 여야 할 것 없이 저출산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하니까. 그런데 최종에 가선 또 예산 등을 이유로 깎이고 축소되더라고요.” 최근 통화한 모 부처 공무원의 말이다. 해당 부처는 저출산 관련한 어떤 정책의 소득 제한을 완화하고 대상자를 확대하기 위해 몇 년째 개선안을 제출해왔지만 번번이 가로막혔다. 올해만큼은 모두가 취지에 공감하고 저출산이 어느 때보다 큰 이슈라 개선안이 통과될 듯 보였으나, 결국에는 예산 등을 이유로 대상자 확대에 실패했다는 이야기였다.

저출산 정책은 말 그대로 출산을 지원해 출산율을 높이는 게 목적인 정책이다. 복지 정책과 다르다. 만약 소득 등 각종 제한조건을 둘 거라면 정책 효과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저소득층의 경우 금액 지원으로 인한 출산율 제고가 확연했는데 중산층 이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식의 분석 말이다. 그저 예산이 부족해 상대적 저소득층부터 지원한다고 하면 복지 정책과 다를 게 무엇인가.

4일 발표된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저출산이 심각한 가운데 지난해 충북에서 유일하게 출생신고가 늘었다. 자녀 수에 상관없이 출생아에 1000만 원을 지급하고, 난임시술비 소득 기준 폐지, 임산부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시설 이용료 감면 등이 견인차가 됐을 것이라 한다. 눈에 띄는 공통점은 ‘조건 없는’ 지원이다.

1억 원, 1000만 원 등 저출산을 타개할 파격적인 새 대책도 좋다. 하지만 아직 기존 정책의 혜택에서도 소외된 사람이 많다. 그들부터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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