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만시찰단 모집 홍보물 첫 공개… 日여행회-조선총독부 철도국 주최
한민족 아픔 담긴 남대문 등 시찰… 방문 후 침략전쟁 미화 강연하기도
일제가 만주사변을 앞두고 조선과 중국 만주 전쟁유적지에 단체 시찰단을 보내는 등 침략전쟁을 미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향토사학자인 심정섭 씨(81·광주 북구)는 8일 본보에 선만시찰단 모집 홍보물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홍보물 크기는 가로 39cm, 세로 17.5cm이다. 선만시찰단은 당시 조선(朝鮮)과 만주(滿洲)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선만시찰단은 1929년 5월 일본여행회,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주최하고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일본여행협회가 후원했다. 모집 인원은 400명 안팎이고 여행 기간은 1929년 5월 11일부터 27일까지 17일 동안이다. 여객선·열차 이용료, 숙박비, 식비 등이 포함된 회비는 당시 금액으로 165원이었다. 일제는 선만시찰단을 계속 진행하려고 했지만 당시 국내외 정세 및 일제가 1931년 만주를 침략한 만주사변 발발 때문에 그 직전인 1929년 한 차례만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보물에는 당시 부산항과 일본 시모노세키항을 연결하는 관부연락선 고려호, 서울 남대문, 압록강을 비롯해 청나라 2대 황제인 청태종 무덤인 중국 선양 북릉, 러일전쟁 배경인 뤼순 바이위(白玉)산 등의 사진이 인쇄돼 있다. 이들 현장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러일전쟁 등 한민족 아픔이 서려 있는 장소다.
홍보물에는 조선이 옛날부터 일본과 교역 관계가 원활했고 문예 공업의 선진국이었다고 적혀 있다. 조선은 고대 우수한 문화유적을 많이 볼 수 있고 만주는 청일전쟁(1894∼1895년), 러일전쟁(1904∼1905년) 전적지로 일제가 막대한 희생을 치른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어 조선과 만주 시찰을 통해 유적, 민정·산업시설, 경영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일제는 선만시찰단을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각종 침략전쟁이 정당하다는 거짓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홍보용으로 활용하려고 했다.
조성운 동국대 역사교육과 겸임교수는 “일제는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주장하기 위해 조선, 중국 사람들을 일본으로 불러 둘러보게 하고 일본인들에게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 중국에 시찰단을 보냈다”고 말했다. 또 “조선, 중국을 시찰한 일본인들은 고향에 돌아가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강연을 하고 자본 투자를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선만시찰단이 살펴본 서울 남대문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 선봉장인 고니시 유키나가가 경복궁을 점령하기 전에 거쳤던 곳이다. 또 바이위산은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 사령관 노기 마레스케가 “쇠와 피가 산을 덮었고 산의 모습을 고쳤다”고 말할 정도로 많은 러-일 군인이 숨진 장소다. 또 선만시찰단이 방문한 북릉의 주인인 청태종은 1637년 병자호란 당시 조선을 침략해 인조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게 만든 삼전도 굴욕을 안겨준 인물이다.
일제는 참가자들에게 일본 시모노세키항으로 돌아가는 관부연락선에서 인천 월미도를 바라보며 묵념하도록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1882년 임오군란의 배후 인물인 하나부사 요시모토 일본공사 등은 월미도로 피신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심 씨는 “일제가 선만시찰단을 통해 침략전쟁을 미화하려고 했지만 거짓 주장”이라며 “세계 공황과 만주사변에 대처하기 위한 얄팍한 수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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