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강릉 한 병원 응급실에서 만취 상태인 보호자가 의료진에게 폭언하고 주먹을 휘두르는 일이 발생했다. 강원도의사회는 ‘지방의료 및 응급체계 붕괴 현실을 보여준 일’이라며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10일 경찰 등에 따르면 강릉경찰서는 지난 7일 0시 18분경 강릉시 한 병원 응급실에서 의사를 폭행하고 난동을 부린 남성 A 씨를 입건했다.
당시 A 씨는 여성 환자와 119를 통해 내원했다. 응급의학과 의사 B 씨는 환자의 머리가 낙상사고로 심하게 부은 것을 확인한 뒤 두개골 골절이나 두개골 내 출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A 씨에게 컴퓨터단층촬영(CT)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러자 만취 상태였던 A 씨는 “이런 일로 CT를 찍느냐”며 욕설과 함께 “말투가 건방지다”고 시비를 걸었다. 이어 “내세울 것도 없는 촌놈들이 무슨 CT를 찍느냐”며 소란을 피웠다. A 씨는 B 씨의 가슴 부위를 한 차례 주먹으로 폭행하기도 했다.
직원들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응급실로 출동했으나 A 씨의 난동이 1시간 가까이 이어져 응급실 업무가 마비됐다.
B 씨는 지난 8일 A 씨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B 씨는 “사건 이후 잠을 자려고 누우면 그때 생각에 숨이 막히곤 해서 현재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며 “휴직까지 고려했으나 지역 응급의료기관 특성상 근무를 메꿀 인력이 없어 여전히 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의사회는 지난 9일 성명을 내고 “이 같은 폭력은 의료기관의 규모가 작고 인력이 부족한 지방으로 갈수록 더 큰 피해로 이어진다”며 “지방의료 및 응급체계 붕괴가 코앞에 닥친 현시점에서 10년 후의 정책설계보다는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진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의료진 폭행 방지를 위한 법률제정과 상시 보호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며 “지방의료기관의 의료진들이 안전하게 지방에 정주할 수 있는 종합적인 프로그램을 정부와 지자체가 책임지고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