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그랬을까 싶더라고요. 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병이라고들 말해요. 죽을 때까지 관리해야 하는데 그 관리가 정말 어렵거든요. 특히 내 자녀가 그랬다고 생각하면… 버티기 힘들 겁니다.”
지난 9일 충남 태안의 한 주택가에서 40대 남성 A씨와 그의 아내(38), 딸(7)이 SUV에서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SUV에는 번개탄을 피운 흔적과 딸이 소아당뇨를 앓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는 유서가 발견됐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접한 C씨는 가슴을 쳤다. 동생이 소아당뇨라고 불리는 1형당뇨병 환자이기 때문이다. C씨는 “15세에 1형당뇨 판정을 받고 가족 모두가 비극적인 순간들을 겪었다”며 “30년 가까이 당뇨병과 싸우고 있는 동생을 생각하면 왜 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당뇨병은 혈액 내의 포도당 농도인 혈당(혈장 포도당)이 상승한 고혈당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혈당을 조절하는 가장 중요한 호르몬인 인슐린 분비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거나 이상 작용을 하면 혈당이 오르게 되는데 발병 원인을 바탕으로 임상적 특징에 따라 △1형당뇨병 △2형당뇨병 △임신당뇨병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김재택 중앙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2형당뇨병은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당뇨병의 유형으로 인슐린 분비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거나 인슐린 저항성의 증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1형당뇨병은 췌장의 베타세포가 파괴돼 발생하는 것으로 처음 진단된 시점부터 평생동안 인슐린 치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태안 일가족의 극단적 선택도 이 1형당뇨가 비극의 씨앗이 됐다. 먹는 약으로도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한 2형당뇨와 달리 1형당뇨는 먹는 약도 쓸 수 없고 직접 하루에도 수차례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대한당뇨병학회 총무이사를 맡고 있는 문준성 영남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2형 당뇨병은 인슐린이 몸에서 어느 정도 분비는 되고 있기 때문에 먹는 약도 쓸 수 있고 내 몸에서 알아서 혈당조절을 하는 작동 기전이 남아 있지만 1형은 온전히 인슐린 주사만 효과가 있다보니 관리의 난이도가 차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반인은 음식을 먹을 때 혈당이 얼마나 오를지, 인슐린은 얼마나 맞아야 할지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몸이 반응하지만 1형당뇨 환자들은 매순간 이 계산을 하면서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을 한다”면서 “인슐린 주사를 많이 맞거나 한번만 빠뜨려도 혈당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특히 어린아이 같은 경우는 부모가 전적으로 관리를 해줘야 하기 때문에 절망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도 “환자 가족들은 진단 후 1년이 가장 힘들다고 하는데 비극적인 선택을 한 가정의 딸 아이가 8개월 전에 1형당뇨 진단을 받았다고 들었다”며 “매순간 인슐린 양을 정해 주사해야 하는데 부모가 정한 인슐린 양으로 아이가 저혈당과 고혈당을 오가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1형당뇨 진단을 받고 나면 다들 한번씩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울먹였다.
더욱이 1형당뇨병 환자와 가족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건 1형당뇨 환자들을 받아줄 병원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문준성 교수는 “1형당뇨는 하루에 4~7번은 손가락을 찔러 혈당 측정을 해야 하고, 하루 4번 이상 스스로 인슐린을 주사해야 한다”며 “그나마 인슐린펌프나 연속혈당측정기가 개발돼 그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긴 했지만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을 설명하고 관리해줄 곳이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의료진과 환자들에 따르면 1형당뇨 환자는 단순히 기기 사용법과 주사법만 알아서는 안 된다. 인슐린의 작용 시간, 각 음식에 포함된 탄수화물 등 영양성분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그것을 토대로 맞아야 하는 인슐린 양을 계산하는 법 등을 배워야 한다.
김미영 대표는 “영양·주사·심리·운동 등 A부터 Z까지 모든 것에 교육이 필요한데 이런 교육팀을 꾸릴 수 있는 건 상급종합병원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위주의 환자만 봐야 하는데 1형당뇨는 아직 중증 난치 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해 결국 갈 데가 없다”고 말했다.
문 교수도 “제도상 상급종합병원에서 중증 난치 질환을 많이 보게 하는 정책들을 펼치고 있는데 1형당뇨는 인정이 안 되다 보니 특히 병원 경영상 내분비내과는 기능을 축소시키려고 하고 있다”며 “이런 이유들 때문에 대한당뇨병학회 교수들은 오래 전부터 1형당뇨병을 중증 난치 질환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왔지만 정부는 충분히 보험 급여 적용을 해주고 있어 중증 난치 질환으로 인정하긴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1형당뇨병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정부가 나름 계속해서 하고 있긴 하다.
환자들에 따르면 1형당뇨는 중증 난치 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해 진료비의 20∼60%를 환자가 부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의료비, 의료기기, 소모품 등에 매달 30만~40만원의 고정 비용이 들어간다. 저혈당 음료, 교통비, 부수적인 치료 비용 등을 제외한 금액만 따졌을 때다.
이에 복지부는 지난 12월 28일 제30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3월부터 19세 미만 소아청소년 1형 당뇨환자의 정밀 인슐린 자동주입기 본인부담률을 30%에서 10%로 줄이기로 결정해 약 380만원이었던 본인부담금은 45만원대로 대폭 낮아진다.
또 소모성 재료는 기본형 1일 2500원을 기준으로 건강보험을 적용했지만 앞으로는 4500원까지 기준액을 높여 건강보험을 지원한다.
하지만 의료계와 환자들은 이 대책에 구멍이 있다고 말한다. 김미영 대표는 “이번에 통과된 대책은 19세 미만 소아청소년까지만 적용되는데 1형당뇨 유병률을 보면 성인이 90% 이상”이라며 “중증 난치 질환으로 인정받으면 의료기기 급여 적용을 받을 수 있는데 성인의 경우 지금으로선 지원받을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1형당뇨는 소아당뇨라고 알려져 있지만 2020년 건강보험 가입자 기준으로 집계된 환자 수를 보면 19세 이하는 3255명, 20세 이상 성인은 4만2715명을 차지했다. 문 교수는 “통계를 내보면 60~70대가 1형당뇨 환자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며 “오히려 1형당뇨는 유전적인 요인이 큰 2형당뇨와는 달리 자가면역이거나 환경적인 부분으로 인해 어느 연령대에도 발병하는 질환인데 성인 환자는 항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형당뇨도 교육을 잘 받고 관리를 잘해 나가면 충분히 문제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며 “비용적인 지원 부분들로만 집중되기보다는 중증 난치 질환으로 인정받아 상급종합병원에서도 경영상의 문제를 차치하고 1형당뇨 환자를 잘 돌볼 수 있도록 의료 시스템 전달 체계가 잘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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