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 생기면 인근 병원에 경보 울리는 일본… 한국서 안 되는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12일 14시 50분


119구급대가 출동한 후 응급실 도착까지 1시간 넘게 걸린 환자, 19만8892명(2022년 기준, 소방청).

김진수(가명·68) 씨는 그런 환자 중 1명이었다. 그는 지난해 1월 12일 오후 8시 37분 가슴 통증과 호흡 곤란 증세로 119에 신고됐다. 만약 심장에 이상이 생긴 거라면 서둘러 치료해야 하는 상황. 인근 구급대가 2분 만에 출동해 3분 만에 진수 씨 자택에 도착했다.

● 병상 찾아 전화 31통, 우리 응급의료의 현실
곧 응급실로 출발할 거란 진수 씨의 기대와 달리 구급대원들은 전화기부터 들었다. “68세 남자 환자인데 체스트 페인(가슴 통증)이랑 디습니아(호흡 곤란)가 있습니다. 수용 가능할까요?” 몇 초의 대기.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구급대원은 다시 휴대전화에 저장된 인근 응급실 목록을 훑었다. 전화한 병원에서 ‘대기 환자가 많다’며 진수 씨를 받아주지 않은 것.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떠도는 원인과 해법을 조명한 미니 다큐멘터리 ‘표류’의 한 장면.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 캡처.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떠도는 원인과 해법을 조명한 미니 다큐멘터리 ‘표류’의 한 장면.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 캡처.
같은 과정이 30차례 반복됐지만 전화기 너머에선 ‘죄송한데요’로 시작하는 대답만 들려왔다. “중환자실에 빈자리가 없어서”, “응급으로 심장 검사가 안 돼서”, “가슴 통증 환자가 너무 많이 대기하고 있어서”라는 답변이 이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수 씨의 숨이 가빠졌다. 옆에 앉은 진수 씨 부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대형 병원 56곳이 몰려있는 서울 한복판에서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떠도는 ‘표류’가 벌어지고 있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 의료진이 모두 가동되는 병원이 어딘지 찾아주는 시스템이 있을 법도 한데, 그런 시스템은 없었다.

진수 씨는 119에 신고한지 1시간 15분 만에 가까스로 서울의 한 응급실에 도착했다. 구급대가 31차례 전화한 끝에 닿은 곳이었다. 그는 다행히 큰 이상 없이 건강을 회복했지만 아찔한 상황이었다. 중앙응급의료센터에 따르면 2022년 전국 응급실을 찾은 환자 가운데 3만7926명이 끝내 숨졌다.

● 일본, 응급환자 ‘표류’ 멈출 때까지 모든 응급실에 경보
일본의 응급의료체계도 16년 전에는 지금 한국과 마찬가지였다. 구급대가 병원마다 일일이 전화해 환자의 상태를 불러주며 수용 가능한지 물어야 했다. ‘구급차 뺑뺑이’와 같은 의미의 ‘구급차 다라이 마와시(たらい回し·대야 돌리기)’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2008년 정부와 의료계가 응급의료체계 협력에 나섰다. 그해 구급차에 탄 임산부가 8개 병원에서 수용 곤란 통보를 받은 뒤 뇌출혈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이대로 둬선 안 된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기 때문이다. 환자가 빈 병상을 찾지 못하고 떠돌면 인근 모든 병원에 경보를 울리는 ‘마못테(まもって·지켜줘) 네트워크’가 그 결과물이다.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떠도는 원인과 해법을 조명한 미니 다큐멘터리 ‘표류’의 한 장면.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 캡처.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떠도는 원인과 해법을 조명한 미니 다큐멘터리 ‘표류’의 한 장면.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 캡처.
동아일보 취재팀이 일본 오사카대 의대 부속병원 고도구급구명센터(응급실)를 찾은 지난해 9월 13일에도 마못테 네트워크 단말기가 ‘깡! 깡! 깡!’ 하며 요란한 소리로 울렸다. 인근 병원 중 한 곳이 ‘수용 가능’을 누를 때까지 이 알람은 계속된다. 위기 상황에 처한 응급환자의 존재를 한 번에 ‘일 대 다(多)’로 알리고 수용 가능 여부를 문의함으로써 ‘표류’를 막은 것.

일본 오사카부는 구급대원 단말기에 이송 가능 병원을 자동으로 띄워주는 ‘오리온 시스템’도 2013년 도입했다. 구급대원이 입력한 환자의 증상과 정보, 현재 위치를 기반으로 이송할 수 있는 병원 목록이 거리순으로 띄워주는 시스템이다. 구급대원이 환자를 이송할 병원을 정하는 과정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 실시간 응급의료체계, 왜 한국서 안 되나

한국에서도 응급실이 실시간으로 가용 의료 자원을 공유하고, 구급대가 최적의 병원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을 개발하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좌절됐다. 일본의 오리온 시스템과 흡사한 ‘AI 앰뷸런스’ 사업이 대표적이다. 소방서와 응급실의 참여가 저조해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떠도는 원인과 해법을 조명한 미니 다큐멘터리 ‘표류’의 한 장면.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 캡처.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떠도는 원인과 해법을 조명한 미니 다큐멘터리 ‘표류’의 한 장면.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 캡처.
무슨 이유였을까. 취재팀은 2022년 9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국내 응급실과 구급차에서 37일을 보내며 응급환자 ‘표류’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를 추적했다. 그리고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일본과 독일, 캐나다, 호주, 미국 등 5개국의 병원과 구급대 등 현장 15곳을 방문해 그 해법을 찾아봤다.

그 고민을 담은 미니 다큐멘터리 ‘표류’를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www.youtube.com/@donga-ilbo)에서 공개한다. 1부 ‘목적지 없이 떠도는 응급환자’는 12일 오후 1시부터, 2부 ‘떠도는 응급의료 해법들’은 15일 오후 1시부터 각각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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