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종합병원 소속 의사가 술을 마신 채 수술을 진행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음주 상태에서 메스를 잡아도 현행법상 형사 처벌할 근거가 없어 ‘솜방망이 처분만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서울 강동경찰서와 의료계에 따르면 12일 오후 11시경 서울 강동구의 한 종합병원에서 음주 상태로 수술을 한 20대 의사 A 씨가 환자 신고로 적발됐다. 응급실 당직 의사였던 성형외과 전공의 A 씨가 60대 남성 환자의 얼굴 상처를 꿰매는 수술을 했는데, 수술 직후인 오후 11시 55분경 환자가 경찰에 “수술한 의사가 음주 상태로 의심된다”며 신고한 것이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혈중 알코올 감지기로 확인한 결과 A 씨의 음주 상태가 실제로 확인됐다. A 씨는 “저녁 식사를 하다 맥주 한 잔을 마셨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찰은 A 씨를 입건하지 못했다. 현행 의료법상 ‘음주 의료 행위’를 형사 처벌하는 규정이 별도로 없기 때문이다. 의사가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진료하는 것은 위험하고 비윤리적인 처사이지만 그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법 규정은 없는 셈이다.
음주 운전이 행위 자체만으로 처벌받는 것과 달리 의사의 음주 진료는 의료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A 씨의 정확한 혈중 알코올 농도는 파악하지 못했다”며 “음주 의료 행위에 대한 행정처분 역시 보건복지부 소관이라 경찰이 할 수 있는 조치는 없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A 씨를 진료에서 배제하고 15일 징계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병원 관계자는 “당연히 음주 치료는 허용되지 않는다”며 “개인의 일탈이라고 해도 이번 사안을 계기로 전공의 교육과 시스템을 재정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실적으로 음주 의료인이 받는 처분은 ‘자격정지’뿐이다. 의료법 제66조 1항 1호에 따르면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하는 행위를 했을 경우’ 1년 범위에서 면허자격을 정지할 수 있다. 하지만 자격정지 처분마저 실제로 이뤄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복지부에 따르면 2015∼2020년 음주 상태로 의료 행위를 하다 적발돼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의사는 7명뿐이다. 모두 1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2020년 12월 국민권익위원회는 ‘음주 의료 행위의 행정처분 기준을 자격정지 1개월보다 강화하라’고 복지부에 권고했지만 3년이 넘도록 개선되지 않은 상태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의사 면허 취소 사유를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로 넓히는 개정 의료법이 지난해 11월 시행된 이후 관련된 행정처분 규칙을 한꺼번에 고치려 준비 중이었다고 해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비도덕적 진료 행위’로만 묶여 있는 조항에 음주 관련 규정을 신설하고 자격정지 기간을 늘리는 내용을 포함해 조만간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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