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놓고 아이 낳게’ 주택 지원 집중… 韓보다 낮던 헝가리 출산율 24% 껑충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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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다시 '1.0대'로

지난해 12월 13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외곽의 미클로시 러슬로 씨(52) 집에서 부인 리터 씨(39)와 자녀 라치카 군(10), 
소피 양(3)이 함께 장난감 기차놀이를 하고 있다. 은행원인 미클로시 씨는 3년 전 정부 지원으로 집값의 3분의 1을 충당해 집을
 마련했다. 부다페스트=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지난해 12월 13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외곽의 미클로시 러슬로 씨(52) 집에서 부인 리터 씨(39)와 자녀 라치카 군(10), 소피 양(3)이 함께 장난감 기차놀이를 하고 있다. 은행원인 미클로시 씨는 3년 전 정부 지원으로 집값의 3분의 1을 충당해 집을 마련했다. 부다페스트=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지난해 12월 13일 저녁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외곽 단독 주택.

두 자녀의 장난감으로 가득 찬 집 안 곳곳을 소개하던 미클로시 러슬로 씨(52)가 “이 집을 살 때 정부에서 집값의 3분의 1을 지원받았다”면서 “둘째 딸이 곧 태어나 집을 넓혀야 할 때였는데 큰 도움이 됐다”며 웃었다.

은행원인 그는 2021년 ‘가족 주택 지원금(CSOK)’ 제도를 통해 집값 6000만 포린트(약 2억2800만 원) 중 1000만 포린트(약 3800만 원)를 빌렸다. CSOK의 대출금리는 최대 연 3%. 헝가리 기준금리가 10.75%인 것을 감안하면 부담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또 ‘출산 예정 대출’로 1000만 포린트를 빌렸는데 대출 후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이자가 면제됐다.

출산 예정 대출의 경우 미클로시 씨가 아이를 한 명 더 낳으면 원금의 30%를 줄여주고, 두 명 더 낳으면 원금을 한 푼도 안 갚아도 된다. 다자녀라는 이유로 집값의 4%인 취득세(240만 포린트·약 910만 원)도 면제됐다.

헝가리는 최근 10여 년 동안 청년층의 집값 걱정을 덜어주는 파격 정책으로 출산율을 끌어올린 나라로 꼽힌다. 2011년 1.23명으로 역대 최저치였던 합계출산율은 2022년 1.52명으로 23.6% 올랐다. 2011년 합계출산율이 1.24명으로 헝가리보다 높았던 한국이 2022년 0.78명으로 40% 가까이 급락한 것과 대조적이다.

헝가리의 경우 주택 정책 외에도 자녀가 4명 이상인 여성의 경우 평생 소득세를 면제해주는 등 각종 조세·재정 정책을 총동원했다. 호르눈그 아그네시 헝가리 문화혁신부 가족 담당 장관은 “가족 지원으로 출산이 증가하면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며 “앞으로도 젊은 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미루지 않도록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산예정 대출-주택수리 지원… 집값 걱정 덜어주니 출산율 1.52명


출산율 반등 이룬 나라들
〈2〉 헝가리, 파격 지원으로 출산율 쑥
출산 예정시 최대 20년 저금리 대출… 자녀 수 따라 상환 유예-원금 경감
넷째 낳은 여성은 평생 소득세 면제… “현금성 지원 장기효과 의문” 지적도
헝가리 남서부 소도시 너지커니저 인근 마을에서 세 자녀를 키우는 마티올라 피터 씨(38)는 “2020년 집을 샀는데 집값의 절반 이상을 정부 도움으로 해결했다”고 말했다. CSOK 제도를 통해 집값 2100만 포린트(약 7980만 원) 중 1000만 포린트(약 3800만 원)를 빌렸고, 이와 별도로 143만 포린트(약 540만 원)를 무상 지원받았다.

마티올라 씨는 부인이 셋째를 임신 중이던 2022년 살던 집을 수리하고 증축하는 데 500만 포린트(약 1900만 원)를 받기도 했다. 인구가 적은 소도시에 별도로 적용되는 ‘마을 CSOK’ 프로그램 덕분이다. 마티올라 씨는 “헝가리는 셋째부터 양육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크게 늘어난다. 특히 지방에서 아이를 키우면 혜택이 더 크다”고 했다.

● 자녀 넷 이상 여성 평생 소득세 면제
헝가리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 지난 10여 년 동안 자녀가 있거나 출산 계획이 있는 가정에 현금성 지원을 집중했다.

2016년 도입된 CSOK는 40세 이하 기혼 여성이 있는 가정이 집을 살 때 자녀 수에 따라 1500만∼5000만 포린트(약 5700만∼1억9000만 원)를 저리로 빌려주는 제도다. 상환 기간은 최대 25년이다. 둘째를 낳으면 1000만 포린트, 셋째를 낳으면 추가로 1000만 포린트를 원금에서 빼 준다.

헝가리는 이것도 부족하다고 보고 2019년 ‘출산 예정 대출’을 추가했다. 용도를 묻지 않고 최장 20년 동안 1100만 포린트(약 4180만 원)까지 빌려주는데, 대출 후 5년 내 첫아이가 태어나면 이자가 면제되고 원금 상환이 3년간 유예된다. 둘째가 태어나면 원금의 30%가 탕감되고 상환은 3년간 더 늦춰진다. 셋째 아이가 태어나면 원금 전액이 탕감된다. CSOK와 출산 예정 대출을 동시에 이용할 수도 있다.

세제 혜택도 다양하다. 자녀가 2명이면 월 4만 포린트(약 15만 원), 3명이면 10만 포린트(약 38만 원)의 소득세를 환급받는다. 2021년 기준으로 4인 가구의 월평균 수입이 약 59만 포린트(약 220만 원)인 헝가리에선 적지 않은 금액이다. 자녀가 4명 이상인 여성은 평생 소득세(15%)가 면제된다.

젊은 세대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유치원 교사로 일하다 육아휴직 중인 케셰르 번더 씨(34)는 2021년 1월 출산 예정 대출로 1000만 포린트를 빌렸다. 첫아이가 2022년, 둘째가 지난해 태어나면서 원금 30%가 탕감됐고, 상환은 6년간 유예됐다. 케셰르 씨는 “최근에 헝가리도 집값이 많이 올랐는데, 대출 덕분에 새집을 마련했다. 셋째도 가질 계획”이라고 했다.

● 자녀 셋이면 연차 7일 추가
헝가리는 현금성 지원 제도와 함께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직장인들은 자녀가 아프면 ‘부모 병가’를 쓸 수 있다. 병원에서 진료확인서를 받아 회사에 제출하면 연차를 따로 소진하지 않아도 된다.

연차도 자녀 수에 따라 늘어난다. 자녀가 1명이면 2일, 2명이면 4일, 3명이면 7일의 연차를 더 쓸 수 있다. 탄초스 어드리언 씨(39)는 “외국계 기업 중 일부는 이런 제도를 달갑지 않게 여기지만 이는 가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헝가리 정부의 방침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했다.

직장이 가정 친화적으로 변하면서 여성의 경력 단절도 줄었다. 2010년 74.2%였던 25∼49세 여성 고용률은 2022년 84.6%까지 올랐다. 지난해 9월 2년간의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한 미클로시 리터 씨(39)는 근무 시간을 전보다 2시간 줄여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한다. 그는 “회사에선 매달 일·가정 양립을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묻는다. 육아 때문에 경력에 손해가 생기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 지속 가능성 두고 우려도
정부의 가족 관련 지원이 늘면서 결혼도 증가했다. 2010년 3만5520건이었던 결혼 건수는 2022년 6만3967건으로 80% 이상 늘었다. 반면 이혼 건수는 같은 기간 2만3873건에서 1만7500건으로 26.7% 줄었다.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고 출산하려는 이가 늘어난 것이다. 퓌레스 튄데 헝가리 인구가족연구소장은 “출산과 육아가 소비로 이어지면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헝가리의 저출산 정책은 지난해 1월 당시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언급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 같은 ‘헝가리 방식’을 두고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헝가리의 지난해 재정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5.9%에 달했는데 상당 부분이 저출산 대책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철희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경제학부 교수)은 “현금성 지원은 출산을 고민하는 일부 계층에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 효과는 장담할 수 없다”며 “헝가리 정책을 참고하면서 우리 실정에 맞는 저출산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헝가리#출산율#주택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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