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해서 과격하게 반항하나’ 등
스스로 응답하는 형식적 검사 그쳐
부모는 대부분 전문기관 연계 거절
조기 치료 못받은채 범죄로 이어져… “상담교사 확충 등 관리체계 정비를”
초중고교 학생들의 정신적 문제나 사회성이 결여된 행동을 발견하기 위한 ‘정서·행동 특성검사’가 형식적으로 운영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 배경으로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을 습격한 중학생 A 군(15)의 사례가 거론된다. A 군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정서·행동 문제를 일으켰지만, 배 의원 사건에 이르기까지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시작된 정서·행동 문제는 조기 발견과 치료 여부에 따라 예후가 확연히 다른 만큼, 학교 내 정신건강 관리 체계를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과격 반항하나’ 질문에 학생 스스로 응답… “실효성 의문”
A 군의 정서·행동 문제 등을 다뤄 온 상담 전문가 B 씨는 2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A 군은 수년 전 초등학생이었을 때도 위험한 물건을 학교에 가져오거나, 여자 동급생을 따라다니는 등의 행동으로 문제가 된 적이 있다”며 “지난해 여름에도 학교 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해서 주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B 씨는 “학교에서 A 군을 다루기 어려워했고, 학교 차원에서 제대로 된 조치는 뒤따르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A 군이 이른 나이부터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지만 현행 교육 체계 내에서 적절한 개입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초중고교 현장에선 ‘정서·행동 특성검사’가 주기적으로 이뤄지지만, 효과가 적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당 검사는 정서, 행동에 문제를 가진 학생을 조기에 발견하고 전문기관과 연계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로, 2007년부터 교육부가 시행해 왔다. 초교 1, 4학년과 중1, 고1에게 의무적으로 실시한다. 이상 징후를 보인 학생은 ‘관심군’으로 선별한다.
문제는 검사 과정 자체가 형식적이라는 점이다. ‘흥분해서 과격하게 반항한다’, ‘나는 솔직하게 답변하고 있지 않다’ 등 65개 검사 문항에 학생 스스로 응답하는 방식인 탓에, 마음만 먹으면 문제가 될 답변을 피할 수 있다. 심지어 초등학생은 부모가 대신 설문한다. 부모가 아이를 세심히 관찰하지 않거나, 학생 문제가 가정폭력 등에서 비롯됐다면 문제를 발견할 수 없는 구조다. 경기 용인시의 상담교사 류모 씨는 “이걸로 과연 고위험군을 발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관심군 선별 이후에 심리상담센터 등 전문기관과 연계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충북 청주시의 한 초등학교 상담교사 유모 씨(48)는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며 (전문기관 연계를) 거절하면 손쓸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2년 초중고 내 정서·행동 ‘관심군’으로 분류된 8만676명 중 2만140명(25.0%)이 전문기관과 연계되지 않았다.
● 학교 2곳당 상담교사 1명꼴
교육부 관계자는 정서·행동 특성검사에 대해 “학생 심리 상태를 개략적으로 파악하는 선별검사”라고 설명했다. 정밀 분석을 위해 개발된 검사는 아니라는 뜻이다. 경기 의정부시 등에서 6년 넘게 전문상담교사로 일한 김모 씨(45)는 “사회성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서 심의를 받는 학생조차 관심군으로 분류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학교 내 정서·행동 위기 학생에 대한 관리가 부실한 가운데 관련 청소년 범죄는 늘어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정신장애를 가진 미성년자 범죄자 수는 2018년 345명에서 2022년 511명으로 4년 새 48.1% 늘었다. 미성년자 범죄자 1만 명당 비율로 따지면 2018년 52.2명에서 2022년 83.7명으로 60.3% 증가했다.
교육부는 올해 중 정서·행동 특성검사 문항을 개편할 방침이다. 현장에선 검사 문항을 개선하는 것만으론 부족하고, 상담 인프라 확충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기준 전국 초중고교 1만2100곳에 배치된 전문상담교사는 5602명으로, 학교 2곳당 1명꼴이었다. 교사 모임 ‘마음친구’의 최경희 공동대표는 “일선 상담교사는 학교폭력 업무를 병행하느라 정작 상담에 충분한 시간을 쏟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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