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급식 ‘종로 원각사’ 가보니
코로나후 기부 계속 줄어 운영난
“요즘엔 대기표 없으면 밥 못 먹어”
한끼 해결위해 새벽부터 몰려들어… “소외노인 식사복지부터 챙겨야”
30일 오전 5시경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무료 급식소 사회복지원각(원각사) 앞. 영하 4도의 추위 속에 노인들이 모여들었다. 노인들은 공원 담벼락을 따라 줄을 서더니, 제각기 준비해온 스티로폼 상자 뚜껑이나 종이 계란판 위에 주저앉았다. 한 노인이 손을 녹이려 자판기에서 뽑은 200원짜리 커피는 추운 날씨 탓에 금세 식어서 차가워졌다.
이 줄은 원각사가 그날 점심에 나눠주는 무료 급식의 ‘우선 대기표’를 받기 위한 행렬이었다. 대기표는 오전 7시부터 배부하는데, 이를 놓치면 그날 급식을 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집에서 나와 줄을 선 것이다. 경기 김포시에 산다는 정승일 씨(83)는 “월세를 내고 나면 기초연금이 6만 원 남는데, 점심값이라도 아끼려고 오전 4시 반에 첫차를 타고 왔다”고 했다.
● 무료 급식소 “기부 줄어 운영 걱정”
고물가와 기부 문화 위축 탓에 무료 급식소 사정이 어려워지자, 저소득 노인 등 취약계층이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새벽부터 대기 줄에 몰리고 있다. 이날 귀마개와 모자, 장갑 등으로 온몸을 두른 채 오전 6시부터 탑골공원 앞에 줄을 선 김용학 씨(73)는 “최근 대기표 없이 급식 줄에 섰다가 밥을 타 먹지 못한 적이 있어서 (오늘은) 서둘러 집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오전 7시가 돼 원각사 자원봉사자가 대기표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3분 만에 대기표 67개가 동이 났다. 고영배 원각사 사무국장은 “예전부터 무료 급식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의 편의를 위해 대기표를 나눠줬는데 새벽 4, 5시부터 대기 줄이 여전히 매일같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표를 손에 쥔 채 탑골공원 주변을 배회하던 노인들은 오전 11시 반경 무료 급식이 시작되자 다시 급식소로 몰려들었다. 대기표가 없는 노인 300여 명은 원각사 앞에 줄을 섰다. 낮 12시경 한 자원봉사자가 “(오늘) 급식이 마감됐습니다”라고 안내했다. 1시간 넘게 기다리다 빈손으로 돌아가게 된 일부 노인은 “이런 경우가 어딨냐”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원각사 측은 최근 정기 기부자가 줄면서 급식량을 줄여야 했다고 한다. 인근에서 또 다른 무료 급식소의 운영 책임자인 자광명 씨(법명·70)은 “인건비가 부족해 나와 자원봉사자 3, 4명이 겨우 운영 중”이라며 “기부금이 부족해 배급 인원이 점점 줄어들 것 같다”고 전했다.
● 코로나19로 위축된 기부 회복 안 돼
무료 급식소들이 운영난을 호소하는 이유는 식자재값이 비싸진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때 위축됐던 기부 문화가 지금껏 회복되지 않고 있어서다.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1년간 한 번이라도 기부했다’는 응답자 비율은 지난해 23.7%로 2013년 34.6%보다 10%포인트 넘게 줄었다. 특히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25.6%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반면 노인 인구는 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는 전년보다 46만여 명 늘어난 973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19%를 차지했다. 고령층 소득 빈곤율은 40.4%(2020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4.2%보다 3배 가까이 높다.
전문가들은 늘어나는 노인 인구에 맞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노인 밀집 지역’ 내 식사 복지부터 챙겨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활동 제약 등으로 스스로 음식을 준비하기 힘든 고령층을 위해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자체가 시설 위탁 등을 통해 음식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부족한 사회적 교류를 채우기 위해 무료 급식소를 찾는 노인도 적지 않은 만큼, 노인 일자리 제공 등을 통해 관계 소외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이민아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단순 지원금 외에도 노인 일자리 등 ‘사회적 교류’가 공존할 수 있는 지원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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