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방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장학금·수련비용·거주비용을 지원받은 의사가 일정 기간 지역에서 근무하는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의사들의 형사 처벌 부담 완화를 위해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도입도 추진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서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을 주제로 여덟 번째 민생토론회를 개최하고 지역·필수의료 4대 정책 패키지와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설치 등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진 역량과 건강보험 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에도 의료시스템의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작년 10월 ‘담대한 의료개혁’을 국민께 약속드린 이후, 그 실천방안으로서 오늘 발표하는 ‘4대 정책 패키지’를 꼼꼼히 준비해 왔다”고 설명했다.
‘지역필수의사제’ 추진…의대 지역인재전형도 늘린다
정부는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도입을 추진한다. 지역필수의사제는 현재 국회 계류 중인 ‘지역의사제’가 의료인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다는 지적을 반영해 마련된 제도다. 지역의사제는 의대 입학시부터 지역에 10년간 의무 근무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로, 의대생의 직업 선택권과 의사의 이동권을 제한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는 지역필수의사제 검토 예시로 ‘지역의료리더 육성제’와 ‘지역필수의사 우대계약제’를 들었다. 지역의료리더 육성제는 대학-지자체-학생이 3자 계약을 맺고, 학생이 ‘지역의료리더 육성 프로그램’을 선택하면 장학금·수련비용을 지원하며 교수 채용 할당 등을 조건으로 일정 기간 지역에 근무하는 모델이다. 지역필수의사 우대계약제는 충분한 수입과 정주 여건(교육·주거 등 지자체 지원) 보장 등을 조건으로 지역 필수의료기관과 장기근속 계약을 하는 모델이다.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근무할 필수 의사 확보를 위해 의대 지역인재전형도 대폭 확대한다. 현재는 비수도권 의대 정원의 40% 이상(부산대, 전남대, 경상대 등 일부 대학은 80%)을 지역 인재를 뽑도록 의무화하고 있는데, 이 비율을 크게 높이겠다는 것이다.
또 지역의료지도를 기반으로 맞춤형 지역수가를 확대하고 지역의료 발전기금 신설 등도 검토할 계획이다.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상급종합병원, 2차 병원(병원·종합병원), 전문병원, 의원 등 각 급별 의료기관도 기능에 맞게 정비하고, 필수의료 협력 네트워크 강화를 위한 지역의료 혁신시범사업도 추진한다. 선정된 권역에는 3년간 최대 500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의대 입학정원 확대…증원 규모는 미정
정부는 2035년 기준 약 1만5000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의사 수급 상황을 고려해 2025학년도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정확한 정원 증원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정부는 의과대학의 현장 수용 역량, 지역의료 인프라, 인력 재배치 방안 등을 종합 고려해 증원 규모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교육·수련 체계도 개선한다. 인턴제를 개편해 수련체계를 임상 역량을 높이는 방향으로 고도화할 방침이다. 아울러 전문의 중심 병원 개편과 연계해 근무시간 등을 포함한 종합적 전문의 수련환경 개선도 추진한다. 현재의 전공의 36시간 연속근무를 축소하고, 필수진료과를 중심으로 전공의 수련비용 지원을 확대한다.
정부는 한정된 의료 인력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의료기간 네트워크를 강화한 ‘공유형 진료체계’를 도입할 방침이다. 퇴직교수 등을 포함한 ‘권역의사인력뱅크’를 설치해 다른 기관에서도 필수의료 진료를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소아, 산부인과 등 특화된 병원에 전문의를 집중시켜 거점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번 방안에는 개원면허 자격을 까다롭게 하는 면허 관리 선진화 방안도 포함됐다. 의대 졸업 후 수련의 상태로 상급 의료기관이나 필수의료에 남지 않고 소득이 높은 개원의로 빠지거나 미용 성형 분야에 정착하는 등에 가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의사면허와 진료면허를 별도 취득해야 하는 영국, 졸업 후 2년간 교육을 거쳐야 면허를 받는 캐나다 등의 사례를 검토 중이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추진…형사 처벌 부담 줄인다
의료사고로 인한 의료인의 형사 처벌 부담을 줄이는 방안도 포함됐다. 의료사고 책임보험 의무 가입을 전제로 필수의료에 대해선 의료사고 공소제기를 제한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추진한다. 특히 필수의료 분야에선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감면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사망사고, 미용, 성형 분야 등은 제외하는 방안 등은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할 방침이다.
분만 등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도 현재 70%에서 100%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 대상을 분만 외에 ‘소아 진료’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필수의료 수가 집중 인상…2028년까지 10조 원 이상 투자
정부는 2028년까지 10조 원 이상을 투자해 필수의료 수가를 집중 인상한다고 밝혔다. 행위별 수가로 지원이 어려운 필수의료 영역에 대해서는 공공정책수가와 대안적 지불제도를 확대해 지원한다.
비급여 관리체계도 확립한다. 백내장 수술, 도수치료 등 비중증 질환이면서 비급여 이용이 많은 진료 분야에 대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항목과 비급여 의료 서비스를 동시에 받는 ‘혼합진료’를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정부는 미용의료 관련 시술 자격을 개선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피부미용 등의 의료적 중요성이 낮은 분야의 시술 자격을 비의료인에게 개방하는 내용으로, 시장을 개방해 고수익을 쫓아 피부과 등으로 빠져나가는 의료 인력을 줄인다는 취지다.
정부는 정책 패키지의 강력한 추진을 위해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개혁 실천 로드맵 마련을 신속히 추진하고 발표 예정인 건강보험 종합계획을 통해 패키지 추진을 뒷받침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지금이 의료 개혁을 추진해나갈 골든타임”이라며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의료 개혁을 일부의 반대나 저항 때문에 후퇴한다면 국가의 본질적인 역할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직 국민과 미래를 바라보며 흔들림없이 개혁을 추진해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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