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191채 보증금 148억 가로채… 청년 4명 극단 선택 등 피해 눈덩이
현행 법으론 징역 15년이 최고형
공범 9명도 징역 4~13년 1심 선고
재판부 “사기죄 최대형량 높여야”
인천 등 수도권 일대에서 피해자 191명을 상대로 148억 원의 전세사기를 저지른 이른바 ‘건축왕’ 남모 씨(63)에게 법원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사기죄의 법정 최고형을 선고하면서 이례적으로 ‘사기죄의 최고 형량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청년 4명 목숨 앗아간 전세사기… 법원 “악질적 범죄”
인천지법 형사1단독 오기두 판사는 7일 오전 사기, 공인중개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남 씨의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범죄 수익 115억5000여만 원의 추징을 명령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공인중개사 등 공범 9명에게는 각각 징역 4∼13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피해자 대부분이 20, 30대 청년이나 신혼부부, 고령층으로 경제적 취약계층을 노린 남 씨 일당의 범행에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2∼5월에는 남 씨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청년 4명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오 판사는 “생존 기본 요건인 주거환경을 침탈한 중대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국가나 사회가 해결해야 한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재범 우려가 크다”며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전 재산이자 거의 유일한 재산을 빼앗는 등 범행 동기나 수법이 매우 불량하다”고 밝혔다.
이어 오 판사는 “주택, 임대차 거래에 관한 사회 공동체의 신뢰를 처참하게 무너뜨렸는데도 터무니없는 변명을 하면서 범행을 부인하고, 100여 명의 피해자가 법정에서 진술하게 하면서 고통을 줬다”고 지적했다.
남 씨의 변호인은 앞서 “담당 법관으로부터 공정한 판단을 구하기 어렵다”며 법관 기피 신청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적법하고 정당한 절차로 공판이 진행됐는데 재판을 지연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 법원 “사기죄 최대 형량 높여야” 이례적 발언
오 판사는 2시간가량 진행된 선고 공판에서 피해자들의 탄원서 내용을 읽다 감정에 북받친 듯 숨을 고르며 “막내 자녀 나이대 피해자들에게 지은 죄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가져야 한다”고 남 씨를 질책하기도 했다.
특히 사기죄 형량에 대해 “선고할 수 있는 한도는 최대 징역 15년이고, 이를 넘어서 처벌할 수 없다”며 “다수 피해자의 삶과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사회 신뢰를 무너뜨리는 악질 사기 범죄를 예방하는 데에는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형법상 사기죄의 형량은 최대 10년인데, 남 씨처럼 2건 이상의 사기 범행을 저지르면 경합범 가중 규정에 따라 형량의 최대 2분의 1까지 더할 수 있어 최대 15년형까지 선고할 수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선고 직후 공범들의 형량이 너무 낮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이날 인천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빼앗긴 전세보증금은 피해자들의 삶의 전부이자 미래였는데 남 씨와 공범들은 여전히 사과는커녕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며 “강력한 처벌과 범죄수익 몰수 조치로 피해자들이 더 이상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밝혔다.
인천지검은 이날 “전세사기 범행과 관련한 사기, 범죄단체 조직 등 사건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대응해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남 씨는 2009년부터 미추홀구 일대에 땅을 사들여 공동주택을 지은 뒤 전세보증금과 대출금으로 다시 건물을 짓는 방식으로 주택을 2708채까지 보유했다. 2021년 자금 사정이 악화하자 소유 주택이 연쇄적으로 경매에 넘어가기 시작했고, 공인중개사 등과 조직적으로 공모해 전세사기를 벌였다. 남 씨의 전체 사기 혐의액은 주택 563채의 보증금 453억 원에 달한다. 이날 선고는 먼저 기소된 주택 191채의 전세보증금 148억 원을 가로챈 사기 혐의에 대해서만 이뤄졌다. 나머지 305억 원의 혐의에 대해선 별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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