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 방침에 대해 대통령실은 “의대 증원은 돌이킬 수 없다”며 의사들의 반발과 집단 휴진(파업) 움직임에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이에 대한의사협회(의협)는 15일 용산 대통령실 앞을 포함해 전국 곳곳에서 궐기대회를 예고하며 6일 의대 증원 발표 후 첫 집단 행동 방침을 밝혀 정부와 의사 단체 간 정면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 40년 동안 변호사는 10배 늘었는데 의사 수는 3배 늘었다”며 “소득이 증가할수록 전문 직역 종사자 수는 늘어나기 마련인데 의사 수는 필요한 만큼 늘어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또 “의사들은 2000명 증원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하지만 2000명을 지금부터 늘려 나가도 부족하다는 게 우리의 의료 현실”이라며 “단체 행동은 명분이 없는 만큼 의사들이 대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 방침에 항의하며 이필수 회장 등 지도부가 총사퇴한 의협은 김택우 강원도의사회장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하고 15일 전국 곳곳에서 궐기대회를 열며 첫 단체 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전국적으로 의사 수천 명이 점심시간 또는 업무를 마치고 거리로 나선다는 계획이다. 또 17일 서울에서 비대위를 열고 집단 휴진 일정 등을 포함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같은 날 전국의사대표자회의를 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12일 밤 온라인 총회를 열고 파업 시기와 방식 등을 논의했다. 이미 ‘빅5’ 병원(서울대, 세브란스, 서울아산, 삼성서울, 서울성모병원) 전공의들이 병원별 투표에서 단체 행동 참여를 결의한 터라 파업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에서 시기와 방식 등을 논의했다고 한다. 전공의들은 대형 병원의 입원 환자 진료, 응급 수술 등 현장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이들이 파업하면 진료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진다.
응급의사들의 모임인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가 비대위를 꾸리고 “(정부가)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모두 응급의료 현장을 떠날 것”이라고 밝히는 등 분야별 의사단체들의 입장 표명도 이어지며 2000년 이후 역대 4번째 의사 집단 휴진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모습이다.
의사들 “정부, 우릴 못이겨” 정부 “법 개정따라 의사면허 박탈 가능”
[의사단체-정부 충돌] ‘의대 증원’ 싸고 의사파업 가시화 전공의 “2000명 늘면 수업 질 저하”… “2020년 파업보다 셀 것” 주장도 소속 의료기관 영업정지 등도 가능… “소신 진료 환경조성” 달래기도 나서
의사들의 집단 휴업(파업) 사태는 2000년 이후 3차례 반복됐다. 의약분업 추진(2000년), 원격의료 추진(2014년) 때는 정부가 의료계의 요구를 일부 반영하면서 정책 추진을 관철시켰다. 하지만 2020년 문재인 정부는 의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며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을 중단했다.
이번 의대 증원 사태와 관련해 4번째 집단행동을 예고한 의사들은 “2020년 파업 때보다 더 강하게 싸우겠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의사들의 단체 행동이 현실화될 경우 의사 면허를 박탈하는 방안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 의사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
의료계에서는 집단 휴진 사태가 현실화될 경우 2020년 파업보다 더 규모가 커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시 정부가 예고한 의대 증원 규모는 연간 400명이었는데, 이번에는 2000명으로 5배나 되기 때문이다. 또 당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상황이라 의사들도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안할 수밖에 없었다.
또 현재 전공의 상당수는 2020년 의대 증원 등에 반대하며 의사 국가고시 응시를 거부해 결국 정부 방침을 좌절시킨 걸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의대생들이었다. 당시 의사 국가고시에 응시한 의대생은 전체의 14%에 불과했다.
수도권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전공의는 “의대는 실습이 중요한 과인데 2000명이나 늘면 수업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수업에 필요한 기자재나 강의를 할 교수가 부족해 함량 미달의 의료 인력이 현장에 나오면 기존 인력의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의사들의 강경 발언도 이어지고 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겁을 주면 의사들은 지릴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의협 회장을 지낸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는 같은 날 페이스북에 “어느 정부라도 의사를 노예화하고 겁박하면 우리는 끝까지 싸운다”고 썼다. 주 대표는 의대 증원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환자들의 수도권 이동을 가속할 것이다. 지방에 부족한 건 민도”라며 수도권 병원 쏠림 현상을 지적했다가 지방 비하 논란에 휩싸여 글을 수정하기도 했다. 민도(民度)는 생활이나 문화의 수준을 뜻한다.
● 정부 “개정 의료법으로 면허 취소 가능”
정부는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파업 움직임에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여론이 압도적인 만큼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 89.3%가 의대 증원에 찬성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재진과 만나 “응급실 뺑뺑이라든지 ‘소아과 오픈런’(병원 문을 열기 전부터 환자들이 줄을 서는 현상) 등은 누구나 아이 가진 사람으로서 경험하는 당면 문제”라며 “얼마 전 국내 최대 대학병원에서 간호사가 뇌수술을 받지 못해 전원된 병원에서 결국 사망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의 또 다른 고위 관계자도 “2000명의 의대 증원 규모는 실제 수요 추계의 3분의 2밖에 안 되는 숫자”라고도 했다.
정부는 파업 참여 의사에 대해 의사 면허를 박탈하는 ‘초강수’도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의료법이 개정돼 어떤 범죄든 금고 이상의 실형이나 선고유예,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들이 집단으로 진료를 거부할 경우 정부는 업무 개시를 명령할 수 있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자격 정지 또는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어 면허 취소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응급의료법, 공정거래법, 형법(업무방해죄) 등으로도 면허 취소가 가능하다”며 “의료법 외에 다른 법으로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한다면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고 했다.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한 의사들이 속한 의료기관도 1년 내에서 영업이 정지될 수 있다.
업무개시명령 전달 절차도 정비했다. 2020년 당시 의대 증원을 추진한 문재인 정부는 파업한 의사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으나 전공의들이 등기로 발송된 업무개시명령서 수령을 거부해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당시에는 전공의들의 개인 연락처를 확보하지 못해 주로 등기로 연락했지만 이번에는 복지부가 전공의 개인 연락처 취합을 마친 상태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의사들이 전화기를 꺼 놓았더라도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면 송달의 효과가 있다”며 당시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복지부를 중심으로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를 구성하고 매일 응급 의료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또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비해 피해를 입은 환자들이 신고할 수 있는 ‘피해신고센터’를 열었다.
정부는 동시에 전공의 ‘달래기’에도 나섰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11일 밤 페이스북을 통해 “(의대 증원은) 어려운 일을 하는 의사들이 노력과 희생에 합당한 보상과 존중을 받고, 과도한 사법적 행정적 부담을 덜며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는 것”이라며 “병원을 지속가능한 일터로 만들고자 하는 진심을 의심하지 말아 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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