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원래 입원하는 날인데 전공의 파업 때문에 입원을 못 시켜준다고 하네요. 일단 약만 받아 가라고 해서 외래로 바꿨어요”
19일 삼성서울병원을 찾은 환자 박 모 씨(70대·여)는 ‘입원 불가’ 통보에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남편의 항암치료를 위해 이곳을 찾은 김 모 씨(60대·여)는 “항암치료가 조금이라도 밀리면 치명적인데, 사람 목숨 가지고 이러면 안 된다”며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소식에 분통을 터뜨렸다.
<뉴스1>이 이날 서울 ‘빅5 병원’을 모두 찾아 취재한 내용을 종합하면 전공의들이 대거 이탈한 병원 현장에서는 검사 대기 시간이 길어지거나 환자들이 입원하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쫓겨나듯 옮겨가는 일이 속출했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 앞에는 오전부터 환자들이 길게 줄을 서서 대기했다. ‘병상이 포화 상태로 진료가 불가하다’는 입간판이 세워졌지만 급히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는 환자는 일부였고 몇몇 환자들은 하염없이 서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렸다.
외래진료 접수대 앞은 환자들이 수십 명씩 대기 중이었다. 간암이 재발한 남편 때문에 전남 순천에서 올라온 정 모 씨(65·여)는 “입원하고 색전술을 받으려면 먼저 알레르기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검사 결과가 3시간 이후에나 나온다고 한다”며 “4년 전에 검사를 받았을 때는 바로 나왔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 씨는 “아직 일정이 바뀐다는 연락은 없었는데 내일 의사들이 파업한다고 해서 걱정이다”며 “환자들에게 피해만 안 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경북 포항에서부터 어머니의 항암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는 손 모 씨(50대 중반·여)는 “뉴스를 보고 (전공의) 파업을 걱정하면서 왔다”며 “(치료가) 연기되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다”고 진저리를 쳤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는 수술이 미뤄지는 경우도 있었다. 왼쪽 머리에 큰 상처가 나 있는 한 남성 환자는 “같은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들은 수술이 3~4일씩 미뤄지는 경우가 많이 생기고 있다”며 “비교적 위급하지 않은 환자들이 연기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리가 아파 입원하려고 왔다는 양 모 씨(56·여)는 “세브란스병원 정도 규모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입원도 쉽게 안 시켜주는 것 같다”며 “접수하는 직원 말로는 당장 급한 수술이라면 당기는데, 그 외에 덜 중요한 건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서울대병원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박 모 씨(69·여)는 “엊그제 주치의 선생님이 내일부터 마취과 등이 파업한다고 해서 수술이 어려울 것 같다고 하더라”며 “오늘 퇴원해서 다른 병원으로 옮겨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 씨는 “내 맞은편 환자도 오늘 퇴원한다. 이게 무슨 난리냐”며 “다들 퇴원하거나 수술 미루고 그냥 입원만 하는 상황”이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담당 환자의 서류를 떼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는 요양보호사 김 모 씨는 “삼성병원에서 의사가 서류를 출력하는 걸 깜박했다는데 이 일을 10년째 하면서 생전 처음 들어본다”며 “파업 때문에 다 앞당겨서 업무하느라 정신이 없는 모양이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의료진 사이에서도 과중한 업무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A 씨(50대·여)는 “환자분들이 검사 결과를 가지고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파업한다니까 우리는 중간에 껴서 어떡해야 하나 걱정이 많다”며 “환자들도 저희한테 불만을 많이 털어놓으신다”고 토로했다.
세브란스병원의 전담 간호사(입원부터 퇴원까지 환자를 담당하는 간호사) B 씨(30대·남)는 “수술 스케줄이 다음 주까지 밀렸고 교수님들이 (전공의 대신) 당직에 들어가고 있다”며 “아무래도 전담 간호사들도 힘이 드니까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편 파업의 여파로 인해 검사가 미뤄진 일부 과에서는 환자가 줄어드는 양상도 나타났다. 서울대병원의 한 의사는 “파업을 준비하면서 검사까지 미뤄지니까 체감상 환자가 오늘 오히려 줄어든 것 같다”며 “내일은 더 줄지 않을까”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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