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잘나가는 사장님이었다. 2013년 가드닝(정원 가꾸기)과 플랜테리어(식물이나 화분을 실내외에 배치하는 작업) 등의 사업으로 월 수천만 원의 매출액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자신의 앞길에는 ‘꽃길’만 펼쳐질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무리한 사업 확장과 배우자의 교통사고로 순식간에 눈앞이 캄캄해지는 상황이 펼쳐졌고 엄청난 ‘번아웃’을 겪어야 했다. ㈜보라 조은하 대표의 이야기다.
그는 “사업이 더 잘될 거란 생각에 가드닝 카페 등 사업 확장을 했는데 뜻처럼 되지 않았고, 남편이 교통사고로 목뼈가 부러질 정도로 크게 다쳤었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빚은 쌓여가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온몸에 진물이 나기도 했다. 그때가 2019~2020년이었는데 내 생애 가장 힘든 해였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에 조 대표가 내린 결정은 의외다. 그는 고역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사회적 기업을 꾸리기로 했다. 그는 “처음엔 ‘사회적 기업’의 ‘사’자도 몰랐다”라며 “힘든 시간을 보내니, 세상 밖에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며 “앞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다. 나와 남을 돌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의 ‘보라’를 설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동생 3명, 모두 공개 입양…어릴 적부터 ‘사람 살리자’는 마음 컸다”
한부모 가족‧미혼모 등 여성 자립준비청년들과 함께 일하는 주식회사 보라는 식물을 키우고, 가꾸는 사람들 역시 성장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회사다. 실내외 조경 및 공간 스타일링, 교육과 창업컨설팅 등 소외된 청년들이 지속적으로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게 돕는 업무를 할 수 있게 한다.
개인 사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음에도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그의 지난 세월이 설명해 주고 있다. 조 대표에게는 오빠와 동생 3명이 있는데, 동생들은 모두 공개 입양됐다. 조 대표는 “엄마는 결혼하고 나서부터 입양을 원했다고 한다”며 “저도 크면서 계속 입양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와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제가 스무 살이 됐을 때 지금 셋째가 왔고, 스물두 살이 됐을 때 막내가 왔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부모와 함께 동생들을 돌보며 20~30대를 보냈다. 그는 “내가 자식처럼 키웠다”며 웃으며 말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라 집에 보탬이 되기 위해 집안의 가장이 돼 끊임없이 일해야 했다. 그는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이제는 20대가 된 동생들의 앞날을 함께 걱정해 주는 것도 큰 언니인 조 대표의 몫이다.
그는 “남들이 ‘뭐 그렇게까지 입양을 하냐’ ‘좋은 세월을 그렇게 보낸 게 억울하진 않냐’는 등 말하기도 하는데, 어릴 적부터 ‘사람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워서 싫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금은 특별한 환경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다양한 모습의 가정과 사회를 이해할 수 있었다”며 “그러다 보니 자립준비청년 등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커졌고 이 사업을 하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하루하루가 ‘우당탕탕’…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내 식구”
2021년 8월 ‘사회적 기업’으로 아름답게 출발했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조 대표는 “매일 매일이 ‘우당탕탕’ ‘시끌벅적’이다”라고 했다. 자립준비청년을 모으는 것부터 이들은 관리‧감독하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여러 지원을 받는 게 익숙해진 아이들은 ‘노동’ 자체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며 “요즘 아이들의 꿈이 건물주나 유튜버가 되는 것이라는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쉽고 빠르게 돈을 벌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이 냉혹하지 않나. 그걸 이해시키는 것부터 난관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 중 몇 명은 9시 출근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평생 이렇게 살아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그래도 요즘엔 중요한 회의가 있을 때면, 그런 약속은 꼭 지킨다. 우리가 보기에는 미약한 발전이지만 그들은 많이 노력한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포기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조 대표와 함께한 직원들은 자격증을 공부하거나, 대학에 입학하는 등 자신의 꿈을 이뤄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는 “여러 해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적성을 찾아주기도 했다. 어떤 아이는 ‘셀러’(Seller)와 잘 어울릴 것 같아 회사 관련 스마트스토어를 해보라고 했고 마케터가 되고 싶다는 아이와 협업시키는 등 프로젝트를 하나 던져줬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회사의 상사이기도 하지만 ‘언니’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과거 주변 환경때문에 정서적인 안정감이 없는 이들에겐 든든한 존재가 돼 준다. 덕분에 덜 불안해져 정신과약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이도 있다. 이와 반면, 가끔은 시쳇말로 ‘뼈 때리는’ 직언도 한다. 그는 “터무니없이 꿈만 큰 애들한텐 과감하게 ‘야! 정신 차려, 네가 뭐라고’라고 한다. 좋은 말만 할 수 없다. 이 사회에서 살려면 이런 따끔한 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끔 말 안 들어서 화날 때도 있다. 그런데 어쩌겠나. 식구와도 같아서 자꾸 눈에 밟힌다”며 “아이들도 이런 제 맘을 알아줘서인지 다른 곳에서보다 우리 회사에서 일을 오래 했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제가 원하는 건 이들의 진정한 자립”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회사에 없어도 이들끼리 회사를 꾸려나가고 이익을 창출해 나가는 모양새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라며 “사회적 기업이라도 영리 회사이니 직원들 월급을 줄 이익은 나야 하지 않나”라고 했다.
또한 “아이들이 성장해 회사를 잘 꾸려서 사회의 좋은 구성원으로 살아가길 바란다”고 바람을 밝혔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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