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6일 전국 의대 입학 정원을 3058명에서 내년부터 5058명으로 2000명 늘리겠다면서 보고서 3개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이후 ‘2000명 증원’을 두고 의사·전공의 단체는 ‘비현실적’이라며 반발하고 나섰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2000명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규모”라며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동아일보는 정부가 참고한 보고서 3개의 저자인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64), 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63),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44)과 함께 적정한 의대 증원 규모와 방식, 정부와 의사단체 간 갈등의 해법 등에 대한 긴급좌담회를 진행했다.
●“의사 부족은 예견된 미래” 이구동성
참석자들은 모두 “현재도 의사 수가 부족하고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점에 동의했다.
홍 교수는 “수도권은 지금도 의사가 초과 상태지만 비수도권 지역에선 의사 부족이 심각하다”며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는 대한의사협회의 주장은 지도부가 주로 수도권에 있다 보니 나오는 것이다. 의사 중 지방 현실을 대표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권 연구위원은 “인구는 2020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지만 의료 서비스 수요가 많은 고령 인구수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의사 수요는 당분간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의사 부족은 예상 가능한 미래”라고 말했다.
정부가 본인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진단한 ‘2035년 의사 1만 명 부족’에 대해서도 ‘타당한 해석’이라고 했다. 정부는 2035년 의사 부족 규모로 홍 교수가 1만816명, 신 교수가 9654명, 권 연구위원이 1만650명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추계하는 방식을 참고해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의료 수요가 달라진다는 점과 의사들의 근로일수 등을 감안해 다양한 시나리오로 추정한 결과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홍 교수도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시했기 때문에 어느 한 값이 연구를 대표하진 않는다”면서도 세 사람의 추계 방법론은 각각 다른데 결과값이 이 정도로 비슷하다는 것은 각 연구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 750~1000명 증원이 바람직”
하지만 참석자들은 정부가 내놓은 매년 2000명 증원 방안에 대해선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신 교수는 “정부는 1만 명 부족 현상을 빨리 해소하기 위해 2000명씩 5년 증원을 결정한 것 같은데 1000명씩 10년 동안 늘리며 연착륙을 시키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정책의 결과를 차분히 평가하고 후속 조치를 구상하기에 5년은 지나치게 짧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아주 장기적으로 보면 인구가 줄면서 의사 초과가 되는 시점이 온다”며 “1000명 이상의 증원은 위험하고 750명 정도가 가장 적절하다는 게 제 생각”이라고 했다. 홍 교수는 ‘늘어난 정원을 모두 비수도권에 배정할 것’이란 조건도 달았다. 그는 “의사가 부족한 건 비수도권이기 때문”이라며 “서울은 이미 의사가 많으므로 늘어난 정원을 배정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5년마다 의대 정원이 적정한지 재평가하는 기관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보고서에서 5%씩 점진적으로 의대 증원을 늘리자고 했던 권 연구위원은 “점진적으로 늘릴 경우 어느 지역, 어느 대학에 우선적으로 배정할지를 두고 사회적 진통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며 “1000명을 늘려 10년 정도 유지해 보면서 필수의료 정책을 함께 시행해 결과를 점검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의대의 현실적 여건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홍 교수는 “해부학 실습의 경우 시신 구하기가 어렵다. 정부 안대로 증원되면 전통적 방식의 해부학 실습은 못 하게 될 것”이라며 “급격히 정원이 늘면 학교 입장에서 감당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2000명 증원이 오히려 의대 교육 인프라에 대한 대학들의 투자 의지를 떨어트릴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권 연구위원은 “이렇게 급격하게 증원한다면 대학들은 5년 뒤 다시 정원이 감축될 것으로 예상해 의대에 대한 추가 투자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필수의료 강화 구체안 내놓고 설득해야”
참석자들은 전공의들은 이제라도 병원으로 돌아가고 정부도 의료계의 숙원인 수가(건강보험으로 지급하는 진료비) 정비를 포함한 구체적인 필수의료 대책을 내놓고 의사들을 설득해야 한다고도 했다.
홍 교수는 “정부와 의사단체 모두 국민을 볼모로 잡고 서로 양보하라고 해선 안 된다”며 “수도권은 한 명도 증원하지 않고 지역에서만 증원을 한다면 반대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 “지금처럼 진료할 때마다 수가가 매겨지는 행위별 수가제를 채택한 이상 필수의료 문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행위별 수가제를 고집한다면 아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소아청소년과(소청과)나 산부인과는 점점 소득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진료 건수와 무관하게 꼭 필요한 진료과목에 높은 수가를 주는 가치 기반 수가제로 보상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전공의들의 병원 이탈이 장기화되면 사고가 날 것”이라며 “전공의들이 병원에서 환자를 열심히 돌보며 필수의료 지원 강화 등을 요구하면 더 설득력 있을 것이다. 또 이번 기회에 대형 병원이 전공의에 의존하는 현실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권 연구위원도 “정부가 추진 중인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건강보험 개혁안 등을 구체화하면서 의사들에 대한 설득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의사 근로시간 반영, 성차별 아냐”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20일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권 연구위원의 보고서 내용을 설명하던 중 “여성 의사 비율의 증가, 남녀 의사의 근로시간 차이까지 분석했다”고 밝혔다. ‘여성 의사가 남성 의사보다 근로시간이 짧다’는 취지의 발언인데 이를 두고 의사단체를 중심으로 ‘여성 의사 비하’ 논란이 제기됐다. 홍 교수도 이날 좌담회에서 “전공의를 기준으로 봤을 때 여성과 남성의 생산성 격차는 없다. 권 연구위원의 연구에서 이런 시각이 반영됐다면 수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권 연구위원은 “남녀 근로시간의 차이를 고려한 건 성차별적 시각이 반영된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여성 의사의 총 근로시간이 남성 의사에 비해 적은 건 자료에서 확인되는 현상”이라며 “외국의 의사인력 추계 연구에서도 여성 의사의 근로시간은 남성 의사의 80% 정도로 보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또 “오히려 보고서에선 여성 의사의 노동시간이 적은 이유를 파악하고, 여성 의사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일·가정 양립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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