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0일 경기 오산경찰서 지구대를 직접 찾아온 고등학생 A 군이 자전거를 훔쳤다가 돌려줬다고 경찰에 고백했다.
26일 오산경찰서에 따르면 A 군은 지구대를 찾아오기 이틀 전인 같은 달 18일 오후 9시경 오산시 한 아파트 내에 잠금장치 없이 세워진 자전거 한 대를 타고 귀가했다.
몇 시간 뒤 자전거 주인은 “누군가 자전거를 훔쳐 갔다”고 112에 신고했다.
경찰의 수사가 본격화하기 전에 A 군은 자전거를 주인에게 돌려준 뒤 스스로 지구대를 찾아와 잘못을 털어놨다.
그는 “평소 친구가 타던 자전거와 비슷하게 생겨 친구의 자전거로 착각했다”며 “잠시 빌려 타려던 것인데, 뒤늦게 다른 사람의 자전거라는 사실을 알고 돌려줬다”고 진술했다. 이어 “일을 끝내고 귀가하다가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아 빨리 여섯 동생의 밥을 챙겨줘야 한다는 생각에 서두르느라 (그랬다)”고 말했다.
사건 서류는 상급 기관인 오산경찰서 여성청소년과로 이관됐다. 담당 경찰관은 A 군의 진술에서 나온 가정 형편에 주목했다.
경찰에 따르면 A 군은 6남 1녀 다자녀 가정의 장남이다. A 군의 부친은 물류센터에서 근무하고, 모친은 심부전과 폐질환 등으로 투병 중이어서 평소 A 군이 중학생·초등학생·유치원생·생후 7개월 영아 등 총 6명의 동생을 돌봤다고 한다. 그는 가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7남매에 부모까지 합쳐 총 9명이 거주하는 곳은 14평짜리 국민임대아파트다. A 군 부친의 월 소득이 있고 차량도 보유한 상태여서 기초생활수급이나 차상위 등 취약계층 선정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A 군 부친은 차량 보유와 관련해 “다자녀인 데다가 아내를 병원에 데려가는 일이 많아 차량이 꼭 필요해서 보유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 군 가정이 복지 사각지대에 있다고 판단해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에 여러 차례 가정 방문을 하며 구체적인 가정 형편을 조사했다. 주민센터와 보건소 등 관계자들과 합동으로 A 군 보호자를 면담하고,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살피며 심리상담도 진행했다.
오산시와 오산경찰서, 주민센터, 청소년센터, 보건소, 복지기관 등 7개 기관은 지난 6일 통합 회의를 열어 A 군 가정에 실질적인 복지 지원을 하기로 했다.
생활지원으로는 긴급복지지원(320만 원×3개월), 가정후원물품(이불, 라면 등), 급식비(30만 원), 주거환경개선(주거지 소독), 자녀 의료비(30만 원), 안경구입비(10만 원) 등을 제공했다. 교육지원으로는 초·중등 자녀(3명) 방과후 돌봄 제공, 중학생 자녀 대상 운동프로그램 제공 및 진로 상담을 했다. 주거지원으로는 기존 주택 매입임대제도(최대 8년 임대)를 지원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A 군의 자전거 절도 사건과 관련해선 경찰은 지난달 11일 선도심사위원회를 열었다. 선도심사위는 소년이 저지른 범죄 중 사안이 경미하고 초범인 경우, 피해자와 합의한 경우 등에 한해 사건 내용과 동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훈방·즉결심판·입건 등의 처분을 내린다.
선도심사위는 A 군에게 즉결심판 처분을 내렸다. 즉결심판은 20만 원 이하 벌금 등 경미한 범죄에 대해 정식 형사소송 절차를 거치지 않는 약식재판으로 전과가 남지 않는다. 법원은 A 군에게 벌금 10만 원의 선고유예를 결정했다. 선고유예는 가벼운 범죄에 대해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유예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사실상 없던 일로 해주는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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