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꿀벌 방향감각에도 영향
세계자연기금-서울대 연구팀 분석… 오염 심할 때 탐색 시간 1.7배 늘어
꿀벌 길 잃으면 식물 수분에 영향
“장기적으로 식량 부족 현상 우려”
매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이어지는 미세먼지 때문에 많은 이들이 시야가 뿌옇게 변하고 숨을 쉴 때도 불편함을 느낀다고 토로한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작은 미세먼지 입자들이 빛의 투과를 방해하고, 빛과 먼지 입자가 부딪쳐 모든 가시광선이 반사되기 때문이다. 심한 날에는 혀에 마치 흙이 묻은 것 같은 텁텁함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미세먼지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꿀벌도 시야를 방해받아 방향감각이 떨어져 꿀을 찾거나 집에 돌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꿀벌 수가 줄어 문제인데, 미세먼지까지 겹치면 장기적으로 식량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꿀벌도 길 잃게 만드는 미세먼지
21일 세계자연기금(WWF)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대기오염으로 인한 꿀벌 시정거리 감소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분석’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번 보고서는 WWF와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연구팀의 1차 연구 결과다.
연구진은 지난해 4∼7월 서울과 제주 등에서 꿀벌 집단 4개의 일벌 2500마리에게 무선주파수인식장치(RFID)를 부착해 벌의 활동 시간을 추적했다. 미세먼지가 m³당 130㎍(마이크로그램) 이상으로 치솟은 날에는 평균 먹이 탐색 활동 시간이 기존의 45분에서 77분으로 1.7배가 됐다. 미세먼지가 m³당 76㎍ 이상이면 ‘매우 나쁨’ 수준이다.
먹이 탐색 시간이 길어졌다는 건 꿀벌의 탐색 기능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꿀벌 등 곤충은 날씨가 흐릴 때 ‘선형 편광’(전기장 또는 자기장의 방향이 일정하게 진동하는 빛) 신호에 의존해 방향을 찾는다. 그런데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면 꿀벌이 탐지하지 못하는 선형 편광의 영역이 늘어난다”며 “길을 찾을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연구 결과 PM2.5 미세먼지 농도가 올라가면 벌들이 방향감각을 잃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 농작물 번식에 결정적 영향
꿀벌이 꽃과 벌집 사이에서 길을 잃으면 식물의 수분과 번식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꿀벌을 포함한 화분(꽃가루) 매개자(꽃가루를 날라 수분을 돕는 생물)가 없다면 꽃과 식물이 번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곤충을 매개로 번식하는 식물에는 사과, 호박, 수박, 옥수수 등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채소와 과일이 포함된다. 영국 왕립지리학회가 꿀벌을 ‘지구상 가장 중요한 생물 5종’으로 꼽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중 71종이 벌의 수분 매개에 의존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세계적으로 연간 최대 5770억 달러(약 770조5800억 원)에 달한다. 벌이 수분을 제대로 못하면 세계 식량 위기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 식량 생산 대국 중국-인도, 타격 우려
연구진은 지금 같은 산업화 추세가 계속 진행되는 상황을 가정해 2050년 꿀벌의 시야 변화를 예상해 봤다. 그 결과 중국과 인도에서 꿀벌이 길을 못 찾는 면적이 가장 많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공장이나 자동차 등 인위적인 요인으로 배출되는 미세먼지 입자가 가장 많은 두 나라다.
중국의 위험 면적은 1.13배 늘어 520만 km²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인도는 2050년에 2010년 대비 꿀벌이 길을 찾지 못할 ‘위험 면적’이 5배 늘어 260만 km²가 되는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인도 북부는 꿀벌이 길을 찾지 못할 날이 100일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두 국가에서 늘어나는 면적은 전 세계에서 늘어날 ‘벌이 길을 헤매는 면적’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연구진은 “인도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과일 및 채소 생산국으로 인구의 7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한다”며 “중국과 인도에서 식물의 수분과 번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세계적인 식량 부족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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