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발견됐는데 다음주 퇴원하라네요…응급실 밖에서 2시간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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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년 2월 27일 17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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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 이탈을 시작한 지 8일째인 27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한 환자가 대기하고 있다. 2024.2.27/뉴스1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 이탈을 시작한 지 8일째인 27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한 환자가 대기하고 있다. 2024.2.27/뉴스1
“간 시술 때문에 입원했는데 폐에 암이 크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런데 당장 다음 주에 퇴원해야 한대요.”

27일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입원 환자 이 모 씨(65·여)는 말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 보였다.

힘겹게 호흡을 이어간 이 씨는 “폐 수술 쪽으로 연결을 안 시켜주고 일단 퇴원한 뒤에 다시 (일정을) 잡으라고 하더라”며 “불편을 넘어서 불안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의사들이)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며 “당장 제 생명이 이렇게 위험한 수준인데 뭐 하는 거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전공의 집단 이탈이 일주일을 넘기면서 서울 ‘빅5’ 병원을 비롯한 대형 병원의 의료 공백이 가속화하고 있다. 인력이 부족한 병원에서 서로 환자를 떠넘기고 진료가 지체되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자 환자들도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지난 21일 평소에 다니던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노모를 모시고 간 김 모 씨(61·남)는 ‘진료에 차질이 생기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말에 이대목동병원 응급실로 갔다가 며칠 만에 다시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 왔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 이탈을 시작한 지 8일째인 27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119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2024.2.27/뉴스1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 이탈을 시작한 지 8일째인 27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119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2024.2.27/뉴스1
김 씨는 “어머니가 원래 콩팥이 안 좋으셔서 세브란스병원에 계속 다니시는 중이었다”며 “협진이 필요한 상황이라 이대목동병원에서도 세브란스병원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더라”고 답답해했다.

김 씨의 어머니는 전날(26일) 세브란스병원으로 와서도 응급실 바깥에 있는 구급차에서 두어 시간 동안 기다리다가 겨우 응급실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다 입원까지는 9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요 며칠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는 김 씨 표정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환자와 보호자들은 갈수록 평행선을 달리는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에 우려를 나타냈다. 진정되기는커녕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분위기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고 했다.

김 씨는 “응급실에서도 간호사들이 계속 분주하게 움직이는 등 정신없어 보이더라”며 “우리는 의사들 없으면 죽는데 정부나 의사나 서로 말을 안 듣고 입장을 굽힐 것 같지 않아 보인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가 8일째를 맞은 27일 오후 대구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를 옮기는 의료진 뒤를 보호자가 따라가고 있다. 2024.2.27/뉴스1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가 8일째를 맞은 27일 오후 대구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를 옮기는 의료진 뒤를 보호자가 따라가고 있다. 2024.2.27/뉴스1
이날 외래 진료를 보러 온 송 모 씨(50대·여)도 “정부나 의사나 모두 폭주하는 것 같다”며 “국민들을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보고 있고 우리가 끼어들 틈은 없어 보인다”고 혀를 찼다.

서울대병원에 심장이 좋지 않은 남편과 같이 진료를 보러 온 70대 여성 A 씨는 “수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빨리 (합의를) 해야지 너무한 것 아니냐”며 “(휴진하더라도) 돌아가면서 해야지 이렇게 한꺼번에 그만두고 집단행동이 아니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병원에 남은 의료진들은 누적된 피로로 인해 초췌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소아중환자실에서 마주친 한 여성 의료인은 눈빛이 퀭하고 피곤함이 역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업무량이 어떠냐’는 질문에 “힘들다”며 “바빠서 죄송하다”고 짤막하게 답한 후 지나쳐갔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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