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대형 로펌 출신 변호사 측이 “살해하려는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허경무)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 A 씨의 2차 공판을 열었다.
A 씨 측 변호인은 이날 “피해자를 여러 차례 가격해 사망에 이르게 한 점은 인정하지만 살해 의도로 범행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며 “예기치 못한 다툼으로 인해 발생한 우발적 상해치사 사건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혼 다툼 중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범행을 저질렀다거나 양손으로 목을 졸랐다고 (공소사실에) 기재된 내용은 사실과 달라 인정할 수 없다”면서도 “경부압박이 있던 사실은 인정한다”고 했다.
검찰이 살해 도구로 명시한 쇠 파이프에 대해선 “자녀들이 함께 사용하던 고양이 놀이용 금속 막대”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사건이 발생하기 훨씬 전에 있던 부부 갈등을 피고인의 살해 동기인 양 (공소장에) 적시한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도 주장했다. 공소장에는 아내에 대한 비하 발언과 외도 의심 등 A 씨가 2013년 결혼 무렵부터 10여 년간 정서적으로 학대한 정황이 담겼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주장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공소를 제기할 때 판사에게 유죄 예단을 심어줄 수 있는, 혐의와 무관한 사실을 적어선 안 된다는 형사소송 규칙이다.
A 씨 측은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평생에 걸친 사죄를 해도 턱없이 모자랄 것이기에 엄중한 심판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라며 “피고인도 ‘당시 무언가에 씌었는지 나 자신도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피고인의 부친이 범행 경위와 성행·사회성 등을 알고 있다”며 양형 증인으로 전직 다선 국회의원으로 알려진 A 씨 아버지를 신청했다. 양형 증인은 유·무죄와 관련 없이 형벌의 경중을 정하는 데 참고하기 위해 신문하는 증인이다. A 씨는 범행 직후 119보다 아버지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피해자 측 의견도 들어야 하는 상황이라 서로 충돌할 수 있다. 고민해 보겠다”며 채택 여부를 추후 결정하기로 했다.
이날 A 씨는 변호인의 의견 진술 당시 큰 소리로 오열했다. 방청석을 채운 유족들은 “연기 그만하라”며 분노했다. 재판부는 “(유족들이) 공소사실에 대한 피고인의 의견에 감정적인 거부감이 있을 것이란 점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는 형사소송법 사법 체계가 용인하는 한도 내에 있다”며 “피고인이 적절하게 죄상·죄책을 밝힐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진정시켰다.
A 씨는 지난해 12월 3일 서울 종로구 한 주상복합아파트에서 이혼소송 제기 후 별거 중이던 아내의 머리를 둔기로 여러 차례 가격하고 목 졸라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피해자 부검 결과, 경부압박 질식과 저혈량 쇼크가 겹쳐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경찰에 통보했다. A 씨가 아내의 목을 졸라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A 씨는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한국인으로, 국내 대형 로펌 소속이었으나 범행 직후 퇴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내달 19일 열리는 다음 재판에서는 사건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 등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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