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저 애들이 다 한 집 자식이오?”
주말을 맞아 네 아이들과 함께 산을 오르고 내려와 잠시 숨을 고르는데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께서 물으셨다. 그렇다고 답하니 “참 다복하고 좋아 보이네” 하시며 한참 시선을 거두지 못하셨다. 80대에 가까워 보이는 그 어르신도 아마 다자녀 부모일 것이다. 1960, 1970년대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4~6명이었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 모습에서 과거 본인 자녀들의 어린 시절을 보고 계셨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그 어르신처럼 아이들을 ‘추억’해야 하는 날에 이를 것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진다. 한 대학 선배는 자녀들이 이미 장성했는데 “퇴근 버스에서 내리면 정류장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아빠’하고 달려와 와락 안기던 그때가 아직도 엊그제 같다”며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억만금이라도 낼 수 있다”고 했다. 처음 들었을 땐 ‘뭘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했는데, 부모가 되어 아이들이 나날이 커가는 걸 보니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다. 넷이라 더욱 왁자지껄한 우리 아이들이 하나둘 떠나고 휑뎅그렁해질 집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헛헛하다. 기쁨이자 행복이었던 아이들이 없는 미래는 감히 상상이 안된다.
● 최초 0.6명대 출산율…청년들 “출산 무섭고 육아 부담”
얼마 전 통계청이 2023년 출생·사망통계를 발표했다. 단연 눈길을 끈 건 출생통계였다.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이 사상 최초 0.6명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연간 합계출산율도 0.72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그냥 꼴찌가 아니라 2위에 큰 차이가 나는 압도적 꼴찌다.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동기간 출산율이 0.7명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한국은 가히 전쟁과 비견될 만한 저출산 위기에 봉착한 셈이다.
사실 결과는 진작에 예견됐다. 코로나19 탓에 2021년과 2022년 혼인 건수가 19만 건 아래로 떨어져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해 출산율 하락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이런 초저출산이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 현상으로 그치지 않을 거라는 게 문제다. 청년세대의 출산과 육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했다. 출산과 육아는 이제 필수가 아닌 선택지다. 그것도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선택지다. 근래 만난 2030 세대 청년들은 하나 같이 출산과 육아에 부정적이었다. 한 후배는 “출산하고 나면 내 일상, 지금까지 이뤄온 것들이 송두리째 무너질 것 같아 무섭다”고 했고, 또 다른 후배는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데 아이까지 건사하는 건 무리”라며 고개를 저었다. “남들 육아 이야기 들으면 도저히 키울 엄두가 안 난다”, “아이 키울 여력이 안 되고 언제 여력이 될지 기약도 없다” 등. 청년마다 사정은 달라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아이는 부담스럽고 육아는 고된 일이라는 인식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요즘 TV를 봐도 아이나 육아 관련 긍정적인 콘텐츠를 찾기 힘들다. 과거 보기만 해도 사랑스럽고 흐뭇한 육아는 비주류로 밀려난 지 오래다. 아이 키우기 힘들어 출산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어난다는 뉴스나 힘든 양육 과정을 조명하는 상담 프로그램, 부모에게 이것저것 준비하고 공부시켜야 한다고 압박을 주는 프로그램들만 가득하다.
● 잃는 만큼 얻는 게 많은 육아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육아가 쉬웠던 적이 있을까. 그럼에도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는 인식이 있었다. 먼저 자녀가 주는 기쁨과 행복, 사랑은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다. 종종 ‘인생의 낙이 아이뿐’이라며 한숨 쉬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불행한 게 아니라 부러움을 살 일이다. 아이가 줄 수 있는 낙은 친구나 회사가 줄 수 있는 낙과 차원이 다른 큰 기쁨이다. 그런 낙이 있다니, 없는 사람들에겐 부러울 일 아닌가.
아이를 키우면 무한한 사랑도 경험할 수 있다. 누군가 그랬다. “이 세상에 유일하게 조건 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있다면 그건 부모와 자식 간”이라고. 아이를 낳고 알았다. 누군가를 이렇게 깊고 넓게,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다는 걸. 부모가 주는 헌신적인 사랑은 알겠는데, 자녀가 주는 조건 없는 사랑은 뭘까? 어릴 때 아이들을 생각해 보면 뭐 주는 것 없어도 ‘부모 바라기’다. 혼이 나도, 잔소리를 들어도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하고 와서 안기는 게 아이들이다. 크면서 부모와 다투기도 하고 남남이 되는 자녀도 있지만, 그런 자녀라도 마음 한구석엔 부모에 대한 조건 없는 애정을 품고 있다. 효자든 불효자든 부모에 대한 모욕을 들으면 발끈하는 이유다.
육아는 부모에게도 많은 걸 가르쳐준다. 옛말에 ‘아이 키워 봐야 어른 된다’고 했는데 아이를 키워 보니 알 것 같았다. 부모가 되면 아이에게 본보기가 되기 위해 좀 더 바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사회·경제적으로도 책임 있는 존재가 되려고 애쓴다. 그 과정에서 단단하고 보다 번듯한 사람으로 거듭난다.
물론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되지 않기로 했다면 강요는 할 수 없다.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s)족이나 비혼주의자처럼 자녀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저 부담과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기엔 자녀를 키우며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 누가 성공한 삶을 정의할 수 있을까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출산과 육아가 그 가치를 인정받기란 쉽지 않음을 안다. 특히 한국처럼 정형화된 성공 답안이 있는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작금의 한국에서 성공한 삶이란 수도권에 살고, 대기업에 다니거나 전문직에 종사하며, 번듯한 집과 차가 있는 삶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이런 삶에 오를 기회는 적고 경쟁은 치열하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아이를 낳아서 회사에서 뒤처지고 돈도 못 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너무 바쁘게 사느라 함께 기쁨을 나눌 배우자도, 자식도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동년배 가운데 큰 돈을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보면 당연히 부럽다. 하지만 ‘대신 당신한텐 이렇게 당신만 바라봐 주는 예쁜 아이 넷은 없잖아’라고 생각한다면? 무얼 성공한 인생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개개인이 인식을 바꿔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자는 말은 아니다. 통계청 ‘2022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 발표에 따르면 중소기업 근로자의 소득 평균은 286만 원으로 대기업 근로자 평균 소득 591만 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런데 대기업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의 14%에 불과하다.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여성들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어렵게 대기업에 들어가더라도 출산과 육아 후 경력 단절에 내몰린다. 여성들의 경력단절과 일·육아 병행으로 인한 성별 임금 격차는 OECD 국가 가운데 최악 수준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성차별, 그밖에 구조적 문제는 정부와 기업이 나서 해소해야 한다.
다만 그와 함께 출산, 육아에 대한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했으면 한다. 육아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만 떠올리는 청년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
3년 전 생일 기자는 아주 특별한 상을 받았다. 퇴근하고 집에 가니 아이들 넷이 고사리 손으로 접은 쪽지를 전했다. ‘XX방으로 가서 하얀 종이를 찾으세요.’ 쪽지를 따라가자 또 다른 쪽지가, 다시 또 다른 쪽지가 이어졌다. 엄마 생일을 위해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아이들 넷이 준비한 깜짝 보물찾기 이벤트였다. 마지막 선물에 이르렀을 때 주책맞게 울고 말았다. 쇼핑백엔 ‘엄마는 건강해야 하니까 무가당 크래커, 화장 안 해도 입술은 꼭 바르니까 빨간 립글로스를 샀다’는 메시지와 함께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첫째, 둘째의 2주치 용돈을 털어 고심 끝에 준비한 과자와 화장품 선물이 들어있었다. 그날 기자는 네 아이를 키운 노력에 대한 모든 보상을 받은 것만 같았다. 그것도 내 아이들로부터. 2명이 만나 0.65명을 낳는 시대다. 하지만 나는 시간을 되돌린대도, 4명을 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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