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김종운 씨와 이명신 씨 부부는 동대문 청량리 재개발 지역 중심에 자리 잡은 다일공동체 ‘밥퍼’에 방문했다.
20년 전인 2004년 2월 14일, 이들은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 대신 밥퍼 봉사를 한 뒤 ‘신혼여행 대신 봉사를 온 부부’로 유명해졌다. 당시 방송매체에서는 이들을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20년 전 봉사 현장에서는 부부만 있었지만, 이제는 지난해 대학교에 들어간 첫째 아들과 고등학교 2학년 둘째 아들 그리고 중학교에 들어간 막내딸과 같이 봉사하고 있다.
부부는 “아이들이 태어난 해에도 빠짐없이 결혼기념일 때 봉사했다”며 “계속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니 이제는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이때쯤이면 여기를 방문할 것이라는 걸 알고 일정을 조정한다”고 전했다.
이날은 암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는 최일도 목사까지 이들 부부를 직접 맞이하며 20주년 봉사 노력에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하루 평일 500~600명, 주말에는 최대 1200명까지 무상급식을 이용하는 노숙인들과 독거노인들의 무상급식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6~7시간 동안 고생해야 하지만, 이들을 반겨주는 자원봉사자들과 밥퍼 관계자들이 있어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신혼여행 대신 자원봉사?
20년 전 결혼기념일 자원봉사는 남편 김 씨의 제안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그는 “젊었을 때 교회 청년부에서 왕성하게 활동을 했고 교회를 빌려 결혼하는 이들을 많이 도와주기도 했다”며 “하지만 언제나 똑같은 결혼식을 보는 게 지겨웠고 우리는 남들과 다른 결혼식을 해보자고 결심했다”고 한다.
실제로 2004년 김 씨와 이 씨의 결혼식은 항상 진행되던 일반 결혼식과는 다르게 진행됐다. 주례를 앞세워 지루한 분위기를 내던 결혼식과는 다르게 파격적인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됐고, 하객들도 이들의 결혼식을 보면서 웃고 갔다고 한다.
이 씨는 “당시 남편이 중요시 한 건 소통이었다. 우리를 축복해 주러 온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이런 결혼식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결혼식이 끝난 이후 바로 신혼여행을 가는 대신 이색적인 소통을 준비하기로 했다. 이 씨는 “회사 사람들이나 가족들은 평소 소통이 가능하지만, 평소에 만나볼 수 없는 분들과의 소통인 봉사를 해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다만 부부는 세간에 잘못 전달된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부부는 “매체들이 신혼여행을 안 갔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갔다 왔다. 봉사를 하고 2주가 지난 후 3.1절 연휴가 겹치면서 그 시간을 활용해 제주도에 갔다 왔다”며 “요즘에도 낮까지는 봉사를 하고 저녁시간은 우리만의 시간을 갖는다. 신혼여행을 포기하고 봉사를 왔다는 소개를 들을 때마다 좀 당황스럽다”고 웃었다.
부부에게 찾아온 천사…끊임없는 봉사
부부가 처음 봉사하러 왔을 때 밥퍼 관계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크게 환영했다. 김 씨는 “첫 봉사를 진행하는 만큼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었지만, 자원봉사자분들이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면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전했다.
일주일간 첫 봉사가 끝난 뒤 부부는 다음 해에는 올 생각이 없었다. 부부는 “우리에게 다음은 생각을 못 했다. 하지만 이듬해 첫아들이 태어나고 결혼기념일이 다가오자 장인어른이 다시 권유해 방문하게 됐다”고 전했다.
부부는 2005년 무상급식 봉사를 위해 첫째 아들을 안고 다시 밥퍼를 찾았다. 김 씨는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아내는 한쪽에서 아이를 보고 저는 계속 자원봉사자들과 봉사를 진행했다”며 “2회차 봉사를 하니 어느 정도 손이 익어서 자원봉사자분들과 무료급식 일을 해 나갔다”고 한다.
당시 밥퍼는 조리실을 제외한 주방 시설이 야외에 노출되어 있었다고 한다. 쌀쌀한 2월 날씨에 야외에서 설거지를 하는 경우가 많아 김 씨는 많이 고생했다고 전했다.
부부는 2회차 봉사부터 5일 동안 식사를 준비하는 비용까지 기부했다고 한다. 당시 밥퍼가 하루 동안 제공하는 무상급식 가치는 약 100만 원이었는데 5일 치를 준비하면서 총 500만 원을 기부한 것이다.
이후 부부는 봉사를 계속 이어갔지만, LG전자 연구·기획팀의 일원이었던 김 씨가 2009년~2012년 해외 주재원으로 가면서 부부의 봉사활동은 중단될 뻔했다. 하지만 김 씨는 결혼기념일마다 휴가를 써서 귀국했고 가족들과 봉사에 참여했다.
봉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건?
부부는 코로나19 감염증이 퍼졌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부부는 “당시 정부가 집합 제한을 선포하면서 노숙인들과 독거노인들에 대한 실내 배식이 크게 제안됐다”며 “이들을 위해 실내 배식이 아닌 밥퍼 앞에 있는 굴다리 앞에서 도시락을 만들고 포장해 나눠줬다”고 전했다.
2월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지만, 도시락 한 끼를 얻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고 그런 사람들에게 도시락을 제공하면서 부부는 보람을 큰 느꼈다고 한다.
다만 부부는 이 과정에서 배식받는 사람들이 싸우는 경우를 많이 봐서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김 씨는 “무료 배식을 하는 동안 조금만 목소리가 높아지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끼면 바로 싸우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며 “싸움을 시작하는 분들은 평소 억압당한 게 많거나 부조리한 현실에 굴복한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사회적 소통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밥퍼와 동대문구청의 갈등
최근 동대문구청이 밥퍼 건물을 불법 증축, 유해시설로 지정하고 이와 관련해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는 부분은 이들 부부에게 큰 걱정으로 다가왔다.
부부는 “만약 밥퍼가 없어지기라도 한다면 우리의 추억이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다”라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봉사활동이 ‘사회와의 소통 자리’였는데 철거를 한다면 소통할 공간이 사라져 힘들 것 같다”고 전했다.
김 씨는 특히 “지금은 부자에게만 돈이 몰리고 가난한 사람은 항상 부족한 세상이다. 밥퍼나 다른 봉사단체들은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서로 봉사활동이라는 소통을 통해 어울릴 수 있는 장소가 된다”며 “눈부신 경제발전과 고도로 발달한 건물이 생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밥퍼같이 사회적 소통을 할 수 있는 곳이 남아 있어야 우리나라가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
김 씨와 이 씨 부부는 20년 동안 봉사를 해오면서 매해 일주일 무상급식 준비 비용까지 지원했다. 올해에는 하루에 300만 원씩 5일 치를 준비해 총 1500만 원을 급식비로 기부했다. 이들 부부가 20년 동안 기부한 돈은 약 1억 원을 넘겼다고 한다.
부부는 “내년에 꼭 와야겠다는 계획이 없다”면서도 “다만 마음이 가는 대로 이맘때쯤이면 또 여기로 올 것 같고 무상급식을 위해 다시 적금을 들 것 같다. 그래서 밥퍼가 계속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전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