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자원 관리, 공급, 정화, 활용 및 관련 기술 개발을 포함하는 물산업은 강을 중심으로 시작된 인류 문명과 함께 출발했다. 산업혁명 전에는 홍수와 가뭄에 대응하기 위한 치수나 관개사업 중심이었다면 19세기 도시화 이후에는 수인성 전염병 확산, 산업 폐수로 인한 환경오염을 막기 위한 수질 제어 기술이 발전했다.
한국도 현재 1조300억 달러(약 1352조 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세계 물시장의 가치를 2000년대 초부터 인식하고 기업들이 기술 개발 및 해외 진출을 시도했으며, 정부도 물관리 일원화 및 물산업 클러스터 조성 등을 지원했다. 그러나 2021년 기준으로 국내 물산업 규모는 약 48조 원, 수출은 2조 원 수준에 불과하다.
원인은 오랜 역사를 통해 물산업 기술을 발전시켜 온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기업들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산업 시장의 80%를 상하수도가 차지하는데 프랑스의 베올리아는 해수담수화 기술을 활용해 물이 부족한 지역에 음용수는 물론이고 농업 및 공업용수도 공급하고 있다. 제약, 디스플레이, 반도체 산업에 필수적인 초순수 관련 물산업 시장은 일본 구리타 등 소수의 기업이 과점하고 있다.
다만 최근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도 생기고 있다. 선진국들은 노후된 물 인프라에 천문학적 투자를 계획 중이지만 인구 감소와 기후 변화 등의 재난은 기존 기술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과거 가뭄과 장마 등 기후 재난을 극복하며 자료를 축적해 온 한국에 빅데이터를 활용한 디지털 수자원 관리 등 새로운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할 기회가 열려 있는 것이다. 재난 대응 관련 시장 규모는 2050년까지 5조 달러(약 656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물산업의 해외 진출을 위해선 인재와 기술 차별성을 확보한 기업이 주도하는 ‘선택과 집중’형 물산업으로의 구조 변화가 필수적이다.
핵심 기술을 가진 기업을 발굴한 후, 해외시장에 진출한 대기업의 역량을 활용하는 상생형 지원이나 처음부터 세계시장에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이스라엘형 지원체계를 적용해야 한다. 물산업에 특화된 인재를 지속적으로 양성할 필요도 있다.
빅데이터나 인공지능(AI)처럼 한국의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정부의 전략적 지원도 중요하다. 아울러 초순수, 폐수 내 자원회수, 탄소발자국 감소 같은 고부가가치 기술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개발하면서 전통적 물산업 구조에서 벗어난 선제적인 시장 확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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