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판돈 줄게” 10대 홍보책 고용… 도박범죄 청소년 1년새 2배로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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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 35명중 12명이 중고생 홍보책
“적은 돈으로 큰 수익” 친구에 권해
회원 1만5000명-5000억대 사이트로
“자금마련 위해 범죄… 대책 시급”

중고교생을 끌어들여 5000억 원대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판돈을 마련해 주겠다’고 유혹하자 도박에 중독된 청소년들이 앞다퉈 친구들에게 사이트를 홍보했다. 경찰에 붙잡힌 10대 도박 사범은 1년 새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청소년 도박 중독 문제를 두고 볼 수 없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 ‘중2’ 홍보책 등 중고교생 12명 낀 도박장 운영단


12일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중고교생을 도박 범죄에 끌어들인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 조직 35명을 검거하고, 그중 총책인 40대 남성 등 10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 조직은 2018년 12월부터 이달 초까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와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 사무실을 두고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도박장 개장)를 받는다. 이들은 각종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는 유튜브 채널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적은 돈으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도박 사이트를 홍보했다.

이번에 검거된 일당 중 12명은 중고교 재학생이었다. 도박에 중독된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10대 청소년들을 홍보책으로 이용한 것. 이들은 도박하다 돈이 부족해진 10대에게 ‘사이트 운영을 도우면 도박 자금뿐 아니라 생활비까지 벌 수 있다’며 꼬드긴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에 따르면 범죄에 가담한 중고교생은 주변 친구에게 도박을 권하거나 텔레그램 광고 채팅방을 운영하는 식으로 사이트를 홍보했다. 그중 중학생 3명은 지난해 8월부터 3개월 동안 500여 명의 회원을 모집했고, 1인당 200만 원의 범죄 수익금을 받아 간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홍보에 힘입어 해당 사이트는 회원 1만5000명, 규모 5000억 원에 이르는 도박 사이트로 급성장했다.

경찰은 해외 도피 중인 조직원 9명의 신원을 특정하고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적색수배 조치를 한 상태다. 확보한 범죄 수익금 83억 원 역시 기소 전 몰수보전 조치했다. 경찰은 또 이들의 죄질이 나쁘다고 보고 최고 사형까지 가능한 범죄단체조직 혐의를 적용했다. 도박장 개장은 최고 징역이 5년형이다.

● ‘중독→범죄’ 굴레에 빠진 도박 청소년


10대 도박 사범은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에 검거된 10대 도박 사범은 171명으로 전년(74명) 대비 2.3배로 늘었다. 최근 5년간 검거된 10대 도박 사범(471명) 중 다시 범죄에 가담했다가 검거된 경우도 19.5%에 이른다.

10대 도박 사범 중에는 “불법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유튜브의 광고를 통해 호기심에 스포츠토토 등을 접한 뒤 본격적으로 도박에 빠졌다”고 경찰 조사에서 밝힌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후 부족한 판돈을 마련하기 위해 범죄까지 가담하게 되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도박 중독 청소년이 판돈을 구하려 마약 유통에 가담하거나 보이스피싱 조직을 돕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엔 스포츠토토에 빠진 고교 2학년생이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이스피싱 중간 관리책으로 일하다 붙잡혀 구속 기소되는 일도 있었다.

중독의학계에선 이미 청소년 도박 중독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지난해 6월까지 ‘도박 중독’으로 건강보험 진료를 받은 10대 환자는 66명이었다. 연말까지 집계하면 2021년(101명)의 기록을 훌쩍 넘을 거란 우려가 나온다. 5년간 진료를 받은 10대 405명 중 완치가 안 돼 재진료를 받은 경우도 70.9%에 이른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도박 사이트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도박 중독 치료 기반을 강화하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청소년#도박범죄#홍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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