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손 잡을 것”…후암동 쪽방촌 다정한 이웃, 구재영 목사 [따만사]

  • 동아닷컴
  • 입력 2024년 3월 14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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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영 목사와 봉사단이 준비한 도시락을 받는 서울역 노숙인. 구재영 목사 제공.
구재영 목사와 봉사단이 준비한 도시락을 받는 서울역 노숙인. 구재영 목사 제공.
#. 올 2월 21일, 서울의 한 쪽방촌에 살던 노부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일주일 간격으로 이곳을 방문하던 쪽방 상담소 간호사가 방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지 않자, 창문으로 집 내부를 살피다가 부부의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이들 부부는 기초생활수급자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시내 쪽방촌‧고시원 등에서 홀로 사는 중장년층의 상당수가 ‘고독사 위험군’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독사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시가 2021년에 실시한 ‘주거취약지역 중장년 이상 1인 가구 실태조사’ 결과 쪽방이나 고시원·여관 등에 혼자 사는 50대 이상 6만 677명 중 3만 6265명(59.8%)이 고독사 위험군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수만 명이 삶과 죽음 사이 경계선에 놓여있는 가운데,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삶의 희망을 안겨주는 사람이 있다. 후암동의 다정한 이웃, 구재영 목사(62)다.
구재영 목사와 봉사단이 준비한 도시락을 받는 쪽방촌 주민. 구재영 목사 제공.
구재영 목사와 봉사단이 준비한 도시락을 받는 쪽방촌 주민. 구재영 목사 제공.

올해로 후암동 쪽방촌에서 산 지 7년이 된 구 목사는 이 지역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매주 월, 화, 수, 금요일 6~7명의 봉사자와 함께 150~180가정을 돌며 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몸이 아픈 곳은 없는지 돌아본다. 목요일은 서울역에 노숙자를 살피며 일요일은 쪽방촌 주민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 그뿐만 아니다. 길을 가다가 다리를 절뚝거리거나 힘없이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고 병원에도 함께 가준다. 그는 후암동 쪽방촌의 주민들의 이웃이자 가족이며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은 주민들이 구 목사를 보면 “목사님, 잘 지내셨어요?”라고 웃으며 인사하지만 처음에는 무척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구 목사는 술에 취해 시비를 거는 주민에게 맞아 뇌진탕으로 입원을 한 적도 있었다.

그는 “여기 사시는 분들 중 대다수가 알코올 중독자”라며 “전에는 제가 ‘술 많이 드시지 마세요’라고 하면 ‘네가 뭔데 간섭이냐!’고 욕설을 퍼붓는 분들도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그런 분들이 많이 없으시다”고 말했다.
구재영 목사가 후암동 주민들과 함께 예배 중이다. 구재영 목사 제공.
구재영 목사가 후암동 주민들과 함께 예배 중이다. 구재영 목사 제공.

구재영 목사가 살고 있는 쪽방촌 옥탑방. 수요일에는 주민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 구재영 목사 제공.
구재영 목사가 살고 있는 쪽방촌 옥탑방. 수요일에는 주민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 구재영 목사 제공.

주민들의 태도가 호의적으로 변한 이유는 구 목사의 지속적인 보살핌 덕분이었다. 구 목사가 밤낮으로 자신을 찾아주고 안부를 물으니 이들의 마음도 한층 누그러졌다.

그는 “코로나19때 사람들이 못 나오고 그랬지 않았나. 그때도 제가 여기에 남아 사람들을 살폈다”며 “아마도 자신과 같은 쪽방촌에 머물고, 계속 안부를 물으니 동질감을 느끼셨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먼저 다가오실 때도 있고, ‘나 여기가 아프다’며 도움을 요청하실 때도 있다”고 했다.

구 목사는 처음부터 쪽방촌에 살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매주 예배가 있을 때만 후암동을 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장애인과 목욕하러 갔다가 그의 등 뒤에 난 상처를 보게 됐다. “여기 왜 그러냐”고 구 목사가 묻자 “등이 너무 간지러워서 벽에 있는 못에 몸을 긁었다”고 그는 답했다.

구 목사는 “그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며 “제가 이들을 섬긴다고 왔는데, 이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려고 왔는데…. 정작 저는 이들의 등을 긁어줄 손도 안 됐던 거였다. 그날 이후로 그들의 손이 돼주기 위해 여기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목회 일을 하기 전, 구 목사는 쪽방촌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는 않았다. ‘사지가 멀쩡한데 왜 노력을 안 하지?’ ‘일할 수 있는데 왜 지원금이나 받고 있지?’라는 편견을 갖고 살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이들의 삶 속에서 들어와서 살다 보니 ‘아, 내가 너무 잘못 생각하고 살고 있었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후암동 쪽방촌의 모습. 구재영 목사 제공.
후암동 쪽방촌의 모습. 구재영 목사 제공.

구 목사는 “여기에 들어오신 분들은 자존감이 이미 떨어진 상태다. 가정이 해체되고 사회로부터 차별받고 소외를 받다보니 살 의욕이 전혀 없는 상태로 후암동으로 오시게 된 것”이라며 “사람이 넘어지면 일어나야 하지 않나, 그런데 이분들은 일어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그냥 길에 누워있는 거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돈 몇 푼 쥐여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자존감을 일으킬 뭔가가 필요한데, 결국은 그들을 향한 ‘사랑’이다”며 “그분들에게 ‘당신은 꼭 필요한 사람이다’ ‘이 사회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라고 말해줘야 한다. 제가 도시락을 전달하면서 바라는 건 이들의 현관문뿐만 아니라 마음의 문도 열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 목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이들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끊임없이 사랑해 주고 기도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겐 초라하지만, 이들에겐 소중한 보금자리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들려오는 재개발 소식 때문이었다.

그는 “쉽게 말하자면 후암동 쪽방촌은 살아서 못 나가는 곳이다. 정말 힘든 삶을 사셨던 분들이,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분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라며 “이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소외받고 차별받는 사람들끼리 모여 살다가 ‘그래도 여기서 좋은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며 떠나실 수 있게 도와달라”고 전했다.
봉사자들이 쪽방촌 청소 봉사를 하고 있다. 구재영 목사 제공.
봉사자들이 쪽방촌 청소 봉사를 하고 있다. 구재영 목사 제공.

올해로 62살이 됐다는 구 목사는 가끔은 지치고 힘들어 후암동을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고 했다. 그는 “어떤 날은 정말 이곳을 떠나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눈에 자꾸 밟힌다”며 “‘아, 이분은 이날 병원 가야 하는데’ ‘내가 없으면 이분하고 목욕탕은 누가 가나’는 등 걱정하면서 살다 보니 이렇게 세월이 흘렀다”고 했다.

자신이 이 사역을 시작하며 늘 마음으로 곱씹는 말씀은 ‘사도행전 20장 24절’이라고 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는 구절을 읽어주며 구 목사는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쪽방촌 주민들과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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