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과 관련해 2022년 1월 10일부터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동아일보 법조팀은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매주 진행되는 재판을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이와 함께 여전히 풀리지 않은 남은 의혹들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계획입니다. 이번 편은 대장동 재판 따라잡기 제58화입니다.
“재판 일정에 늦어 죄송합니다.”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 대장동·성남FC·백현동 관련 배임·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재판이 시작하기 전 재판부를 향해 머쓱한 웃음과 함께 이렇게 밝혔습니다.
재판은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이 대표는 오전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오전 11시에 열린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하느라 오후 1시 30분이 되어서야 법정에 출석한 것입니다. 이 대표는 전날 재판부에 시간 변경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오후에 출석했습니다.
이 대표가 불참한 오전 재판에서 재판부는 “오늘 기존 재판에서 했던 증언과 관련해 증거조사 절차를 갱신하기로 했는데 이재명 피고인이 나오지 않아 진행이 어려울 것 같다”며 “오후 1시 30분부터 재판을 속행하겠다”며 휴정을 선언했습니다.
● 총선 앞두고 너도나도 재판부에 기일변경 신청
총선이 다가오자 재판부에 기일 변경을 요청한 것은 이 대표 뿐만은 아닙니다. 증인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 역시 총선 출마로 인해 증인 출석 일정을 4월 이후로 변경해달라고 재판부에 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증인이나 피고인들 선거 관련 일정을 고려하긴 어렵다”며 예정대로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재판부에 정진상 전 민주당 정무조정실장에게 보석 조건을 준수하라고 주의시켜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검찰은 “정 전 실장이 최근 공천과 관련해 민주당 관계자들과 대포폰으로 연락한다는 보도가 있었다”며 “정 전 실장은 사건 관계자들과 접촉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으로 보석 석방된 것이므로 보석 조건을 준수하라고 주의를 환기해 달라”고 밝혔습니다. 정 전 실장은 2022년 12월 뇌물수수, 부정처사후수뢰, 부패방지법 위반,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됐으나 지난해 4월 전자장치 부착을 조건으로 보석을 허가받아 풀려났습니다.
재판부는 정 전 실장이 법원의 허가 없이 부산에서 일정을 보내고 보호관찰 위반 통지를 받은 것과 관련해 외박 사유를 물었습니다. 정 전 실장은 “지인하고 (제) 집이 멀어서 다음날 새벽 6시쯤 귀가했다”고 답했고 재판부는 “앞으로 12시 넘어 귀가하는 경우는 사전 허가를 받는 걸로 조건에 기재하겠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거나 피고인 스스로도 조심하지 않으면 보석 조건 추가할 수 있으니 조심해달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날 오후 재판에서 이 대표는 3월 19일에 예정된 유 전 직무대리의 증인신문과 관련해 “그날은 정진상 피고인 측 반대신문으로 알고 있다”며 “저와는 관련이 없어서 저희로서는 반대신문에는 아무런 관여를 할 수 없다”며 변론분리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저번에도 말했지만 반대신문 자체가 공통된 증거로 쓰일 수 있어 분리해서 진행하지 않았다”며 “통상적이지 않고 변론 분리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일축했습니다. 재판부는 다만 이 대표의 출석을 강제할 방법이 없다며 ‘기일 외 증인신문’을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기일 외 증인신문이란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을 경우 먼저 절차를 진행한 뒤 향후 해당 조서를 증거조사 하는 방식인데, 이럴 경우에는 이 대표가 불출석하더라도 재판 진행은 가능합니다.
● 위증교사 혐의 재판서 검찰과 설전
이 대표는 지난달 26일과 27일에도 위증교사 혐의 재판에 출석했습니다. 이 대표는 2018년 자신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김병량 전 성남시장의 수행비서인 김모 씨에게 자신이 원하는 내용의 허위 증언을 요구했다는 혐의를 받습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 이 대표의 부인 김혜경 씨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을 받기 위해 수원지법에 출석하며 부부가 동시에 재판을 받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 공범으로 이 대표와 함께 기소된 앞서 김 씨는 모든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김 씨는 이 대표의 부탁으로 위증했다는 주장을 반복하며, 이 대표가 위증교사 혐의를 부인하는 것에 대해선 꼬리 자르기라며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꼈다고 증언하기도 했는데요. 위증교사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이 대표 측은 “검찰이 녹취록을 일부만 제시하는 등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만 골라 부당하게 공소를 제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검찰은 최근까지도 두 사람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며 이들이 2022년 9월에 나눈 문자메시지를 법정에서 제시했습니다. 문자메시지에 따르면 당시 김 씨는 이 대표의 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체포된 것을 위로하기 위해 “힘내세요 형님”이라고 보냈고 이 대표는 다음날 “감사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검찰은 “(이 대표가) ‘녹취록을 짜깁기했다’고 하는 데 전혀 아니다”라며 “녹취 파일 전체를 읽어보면 ‘사실대로 진술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이야기하는 대로 허위로 말하라’는 것인지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간할 수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양측의 공방이 계속되자 재판부는 “검찰 측은 위증교사라고 하고 이 대표는 아니라고 하니까 (녹취록을) 쭉 듣는 게 핵심일 것 같다”고 제안했지만 이 대표 측은 “다음 기일에 재생하자”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 李 “사탕 한 개 얻어먹은 적 없어”
이 대표는 지난달 27일 열린 뇌물 등 혐의 재판에도 출석했습니다. 이날은 법관 정기 인사로 배석판사 2명이 교체됨에 따라 검찰이 공소사실을, 피고인 측이 혐의 인부 여부를 낭독하는 방식으로 갱신 절차가 진행됐습니다.
발언 기회를 얻은 이 대표는 “사탕 한 개 얻어먹은 일이 없다”며 “대장동 사업에서 수천억원의 이익이 발생했는데 관련자나 주변 사람들을 사적으로 만나거나 접촉한 적도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저는 그들과 유착한 게 아니라 그들의 이익을 오히려 뺏으려 했다”며 “성남시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처분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대표 측은 유 전 직무대리의 진술 신빙성도 지적했습니다. 이 대표 측 변호인은 “유동규가 검찰의 회유 압박으로 진술을 번복한 이후 진술이 오히려 디테일해지고 있는데 상세히 묘사할수록 진술 구체성이 떨어진다”며 “유동규 진술이 아닌 다른 객관적 증거로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유동규가 민간업자들과 저지른 범행에 이재명과 정진상을 교묘하게 엮어서 얹은 것”이라며 “검찰은 ‘정진상에 모두 보고됐으니 이재명도 정진상을 통해 모두 공유받았을 것’이라고 할 뿐 언제 어디서 어떻게 공모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불공정 무도함 심판해달라”…李, 법원 앞에서 작심 발언
이 대표는 이달 8일 오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 출석하던 중에는 이례적으로 법원 청사 앞에서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통상 이 대표는 재판을 위해 법원에 들어올 때 취재진의 질문에도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이날은 작심한 듯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이 대표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올린 뒤 조용히 해달라는 의미로 잠시 입에 가져다 댔습니다. 그러면서 “총선을 얼마 앞두지 않은 상태에서 야당의 당 대표가 법정을 드나드는 이 모습이 우리 국민들 보시기에 참으로 딱할 것”이라며 발언을 시작했습니다.
이 대표는 “대통령의 부인은 주가조작, 디올백 수수 이런 명백한 범죄 혐의들이 상당한 증거에 의해서 소명이 되는 데도 수사는 커녕 국회가 추진하는 특검까지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막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아내는 7만 원 밥값을 대신 냈다는 이상한 혐의로 재판에 끌려다니고 저 역시 아무런 증거 없이 무작위 기소 때문에 재판받고 있다”며 “국민들께서 이 불공정과 무도함에 대해서 총선에서 심판하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는 다가오는 총선을 의식하는 듯 “심판해야 바뀐다”며 “못 참겠다, 더 견디기 어렵다 이렇게 생각되시면 꼭 투표하시고 심판해 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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