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37곳중 정신질환 대상 6곳
교육청 “우울증은 출석 인정 안돼”… 어렵게 찾아가도 사실상 학업 불가
정신질환 입원 청소년 2년새 32%↑… “교육당국 인식 현실 못따라가” 지적
최은지(가명·17) 양은 6일 떨리는 마음으로 교실 문을 열었다. 지난해 말 우울증이 극심해져 10차례 넘게 자해를 시도한 뒤 학교를 그만둔 지 5개월 만의 등교였다. 다만 최 양이 이번에 다니기 시작한 학교는 수도권의 한 정신병원 안에 있는 ‘병원학교’였다. 이곳에서는 아직 일반 학교에 다닐 정도로 회복되지 않은 최 양도 치료와 학업을 병행할 수 있다는 조언을 듣고 찾아왔다.
하지만 최 양은 병원으로부터 당황스러운 안내를 받아야 했다. 관할 시도교육청이 최근 이 병원에 “우울증 청소년에겐 출석과 성적을 인정해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는 것. 최 양의 어머니는 “어렵사리 찾아왔는데 여기서도 학업을 이어가기 어렵다니 좌절된다”고 말했다.
● 아동 고립 막을 병원학교, 정신질환엔 ‘닫힌 문’
18일 교육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병원학교란 석 달 넘게 입원하거나 집중적인 통원 치료가 필요해 일반 학교에 가기 어려운 학생을 위해 특수교육법 등에 따라 마련된 일종의 파견 학급이다. 아프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인근 학교에서 파견한 교사가 병원 내에서 학생 환자에게 일반 교과과정을 가르친다. 미술치료 등 특별활동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문제는 최 양처럼 우울증이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불안장애 등 정신질환으로 장기 입원하는 학생은 병원학교를 이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정경희 국민의미래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병원학교는 37곳인데, 정신질환자가 이용할 수 있는 곳은 그중 6곳뿐이다. 31곳은 신체질환자만 등록이 가능하다.
어렵사리 학교를 찾아도 출석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병원학교의 출석과 성적은 관할 교육청 내 특수교육운영위원회가 ‘건강장애’로 인정한 학생에 한해 인정되는데, 우울증 등 정신질환은 ‘건강장애’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다. 실제로 국립정신건강센터 내 병원학교인 ‘참다울학교’에선 재학생 11명 중 9명이 출석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그간 병원학교를 운영해온 전국 정신병원 6곳은 위탁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출석을 인정해 왔다. 그런데 최근 일부 병원학교를 담당하는 시도교육청이 “병원학교는 원래 백혈병이나 소아암 등을 앓는 학생을 위한 곳이고, (정신질환 학생에 대한) 재량 출석 인정은 편법”이라며 제동을 걸면서 그마저도 불가능해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학교 생활을 이어가기 쉽지 않은 정신질환 아동·청소년이 더 깊은 학업 사각지대로 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정신질환 입원 아동·청소년 2년 새 32% 증가
이는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가운데 관련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강조해온 정부 기조와도 배치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정신질환으로 건강보험 진료를 받은 만 5∼20세 환자는 2021년 24만6182명에서 지난해 33만2363명으로 늘었다. 특히 같은 기간 이 나이대 입원 환자는 6597명에서 8724명으로 32.3% 증가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은 정신건강 혁신대책을 발표하면서 초중고교 내 상담센터 확대 등 청소년기 정신건강 문제 해결 대책을 여러 건 내놨다. 수도권의 한 정신병원에서 병원학교를 담당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증세가 심한 아이는 경험이 풍부한 의료진과 교사가 옆에서 돌봐야 한다”며 “교육당국의 인식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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