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 서울행정법원장 13건 주재
사안 복잡한 장기미제 분쟁 다뤄… 원고-피고에 의견 정리하고 설명도
37개 법원 모두 법원장이 직접 참여… “원숙한 능력으로 재판 숨통 틔울것”
“법원장으로서 재판하게 돼 영광입니다. 장기간 (판결이) 미뤄진 사건을 일부나마 처리하고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8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206호 법정. 판사석에 앉은 김국현 서울행정법원장(58·사법연수원 24기)이 재판을 주재하기 전 이렇게 말했다. 이날 김 법원장은 행정9부의 재판장을 맡아 ‘법원장 재판’을 진행했다. 법원장 재판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취임 일성이었던 재판 지연 문제 해결을 위해 14일 경기 수원지법을 시작으로 최근 전국 법원에 도입됐다.
● 재판 당사자 “원활한 재판 진행 느껴”
이날 김 법원장은 접수된 지 3년이 지난 장기미제 행정분쟁 사건 중 사안이 복잡한 13건을 맡아 진행했다. 여기엔 아동학대를 이유로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은 초등학교 교사가 2019년 12월 제기한 복직 소송도 포함됐다. 한 웹툰 작가가 특수교사를 아동학대로 고소한 사건과 유사한 구조다. 웹툰 작가 사건의 결과를 지켜보기 위해 결정이 지연되고 있었다.
김 법원장은 심리 도중에도 재판 지연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한 원고가 “아직 관련 사건의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라며 의견 표명을 주저했다. 그러자 김 법원장은 “행정 제재와 형사사건은 별도라서, 한쪽 결론을 기다리기 위해서 다른 쪽을 멈출 순 없다”며 의견을 촉구했다. 피고가 ‘관련 형사사건의 항소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하자 그는 “(관련 사건의 판결을 기다리느라) 이 소송의 결론이 계속 미뤄지면 원고 측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전국 최초로 행정법원에서 네 번째 근무를 하며 ‘행정법원통’으로 알려진 김 법원장은 원고와 피고에게 민형사상 소송과 행정소송의 차이점을 상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이날 법정에 나온 재판 당사자들은 “진행이 평소보다 원활했다”고 밝혔다. 그중 한 명은 “평소엔 재판부가 ‘네, 네’라고만 하고 별다른 구체적 의견을 주지 않고 빨리 듣고 끝내기 바쁘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오늘은 법원장이 재판 당사자 의견을 한 번 더 정리해서 알려주고 확인까지 해주니 재판이 편하고 원활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 “신속 결론 가능” vs “법관 증원 필요”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전국 37개 법원이 모두 법원장 재판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 관내 법원에선 18일 서울행정법원을 시작으로 중앙지법(28일)과 동부지법(22일), 남부지법(25일), 서부지법(27일) 등에서 이달 중 법원장 재판이 예정되어 있다.
재판 지연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인 만큼 법원장들은 주로 기존 재판부로부터 장기미제 사건을 재배당받아 처리하게 된다. 법원 관계자는 “원숙한 재판 능력을 갖춘 법원장이 재판 업무를 담당하게 됨으로써 재판 지연 해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법원장이 솔선수범하면서 법원 구성원들과 재판 경험을 공유해 재판 지연 해결에 도움이 되는 제도 등을 발굴하는 것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법원장 1명이 재판에 추가 참여함으로써 모든 재판 지연을 막을 수는 없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판사 부족 등에 대한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장기미제 사건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법원장 재판으로만 재판 지연을 해결하려고 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며 “재판 절차의 효율성 개선, 법관 증원, 정보기술(IT)의 활용 확대 등의 대책이 함께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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