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혼란]
전공의 이탈 한달, 의료현장 르포
교수들, 위급한 수술만 겨우 시행… “수술 빨랐다면 호전됐을 환자 많아”
지방선 의사 만나러 다른 도시 가야… 아산병원 찾은 尹 “정부 믿고 대화를”
“바로 수술하면 상태가 호전될 수 있는 환자들인데 한 달째 수술을 미루고 있습니다. 이제 한계입니다. 환자들이 치료 기회를 놓칠까 봐 두렵습니다.”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최세훈 교수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병원 이탈 전까지 매주 10건씩 진행하던 폐암 수술을 지난달 말부터 3건 안팎으로 줄였다. 전공의 19명과 전임의(펠로) 13명이 차례로 병원을 떠나면서 매우 위급한 수술 외에는 메스를 잡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환자들은 다른 병원에선 수용하기 어려운 중증일 때가 많아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기도 쉽지 않다.
흉부외과 중 폐암 전문인 폐식도 외과의 경우 전공의와 전임의가 모두 떠나 교수 7명만 남은 상태다. 수술을 마친 중환자 예후 관찰이나 다른 과의 흉관(胸管) 삽관도 교수들이 돌아가며 맡고 있다.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하며 전공의들이 병원을 본격적으로 이탈하기 시작한 지 20일이면 한 달이 된다. 정부는 공공병원 운영 시간을 늘리고 대형병원에 공중보건의(공보의)와 군의관을 투입하는 등 비상진료체제를 가동해 의료 붕괴를 막고 있다. 하지만 둘러본 의료 현장 곳곳에선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었다.
● 대형병원은 ‘한계’, 보건소는 ‘휴진’
전문의가 3명인 삼성서울병원 소아외과는 위급한 신생아 수술이 아닌 다른 수술은 일절 못 하고 있다. 소아외과는 항문이나 식도가 없이 태어난 신생아 등 민감한 수술을 맡는데, 국내 전문의는 50명 정도에 불과하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외과 서정민 교수는 “전공의와 전임의가 없어 모든 수술을 교수 3명이 책임지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서울 주요 병원의 한 이식외과 교수는 “몸도 힘들지만 마음의 상처가 더 크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중증·응급 환자 공백을 막기 위해 의료 취약지역에 배치됐던 공보의를 차출해 대형병원에 배치하면서 해당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18일 전북 무주군 무주군보건의료원 진료실 앞에는 ‘전공의 파업으로 공중보건의 파견돼 휴진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지난주부터 의료원 성형외과 전문의 2명이 다른 지역 병원에 차출됐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60, 70명이 찾던 해당 과 외래 진료도 잠정 중단됐다. 진료를 위해 의료원에서 40km가량 떨어진 다른 도시 병원에 가야 한다. 공보의 7명 중 2명이 서울 대형병원에 차출된 경남 산청군 보건의료원도 사정이 비슷하다. 응급실 의사가 4명에서 3명으로 줄었고 전문의가 빠진 외과에는 보건지소에서 근무하던 일반의가 자리를 옮겨 진료하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 “정부 믿고 대화 나와 달라”
상급종합병원(3차 병원)이 전공의 이탈로 진료와 수술을 줄이면서 환자들은 종합병원과 전문병원 등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18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서울성심병원 2층 정형외과 대기실에는 환자와 보호자 등 20여 명이 북적이는 모습이었다. 서울성심병원 관계자는 “경증 및 준중증 환자들이 몰리면서 응급실 환자는 2배 이상으로 늘었다”며 “응급의학과 전문의 2, 3명을 더 채용해 전공의만 근무하던 응급실을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로 거점 국립대 병원의 역량 강화와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 등의 필요성을 국민들도 인지하게 됐다”며 “정부에서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변화의 흐름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1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을 방문해 의료진에게 “증원 수를 조정하지 않으면 대화에 응할 수 없다고 고수하지 말고 후배들을 설득해 달라. 정부를 믿고 대화에 나와 달라”고 호소했다. 윤 대통령이 전공의 이탈 사태 후 병원을 방문한 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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