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알리·테무 공습에 ‘짝퉁 디올’ 쏟아지는 평택세관… 택배 1건 검사에 5초도 못 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1일 03시 00분


중국 직구 최종관문 평택세관 가보니



“방금 하얀 박스 ‘지재권’으로 빼주세요.”

19일 오후 2시 반 경기 평택시 평택직할세관 특송통관장 안. 스피커에서 말이 흘러나오자 중국 직구(직접구매) 물품들을 실어 나르던 6번 컨베이어 벨트가 멈췄다. 엑스선 검사에서 지식재산권 위반, 즉 ‘짝퉁’ 의심 물건이 발견됐다는 알림이었다.

이내 한 직원이 지목된 상자를 집더니 빨간 매직으로 죽 그어 옆에 놓인 카트로 옮겼다. 이 카트 뒤로는 성인 여성 키만큼 물건이 쌓인 카트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물건들엔 하나같이 통관 보류를 뜻하는 빨간 매직 표시가 그어졌다.

같은 시간 평택세관 특송통관장 2층 엑스선 판독실에선 세관 직원들이 각자 앞에 놓인 엑스선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컨베이어 한 대를 맡아 통관 검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6번 컨베이어 담당 직원의 모니터에 뜬 건 금속 ‘디올’ 로고가 박힌 가방. 원래 수백만 원에 달하는 명품 백이지만 세관신고서에 적힌 가격은 단돈 5만 원이었다. 해당 물건이 카트에 담기는 걸 확인한 직원은 앞에 놓인 종이에 송장번호를 적은 뒤 ‘지재권’이라는 글자를 덧붙였다. 책상에는 이런 짝퉁 의심 물품 등의 목록이 적힌 종이가 쌓여 있었다.

경기 평택세관에 도착한 중국발 직구 물품들이 줄지어 엑스선을 통과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직원 1명이 1만5000개 짝퉁 검사

알리익스프레스(알리), 테무 등 가성비를 내세운 중국 이커머스의 공습에 이들 플랫폼에서 파는 짝퉁·유해 물품 유입도 덩달아 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평택세관을 거친 중국발 직구 물품은 3975만 개다. 2020년 1326만 건이었는데 3년 새 3배로 폭증했다. 지난해 국내로 반입되는 중국 직구품의 44.8%가 평택세관을 통해 들어왔다.

평택세관에서 통관을 담당하는 직원 수도 이 기간 8명에서 27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24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며 올해는 이보다 더 늘어 34명이 일한다. 5개 조가 밤낮없이 엑스선을 지나는 중국 직구 물건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런데도 직원 한 명이 하루에 처리하는 통관은 1만5000건으로 여전히 많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중국 직구 물량에 비해 세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최근 알리가 창립 기념일에 맞춰 대규모 할인행사를 진행하는 등 중국 이커머스의 국내 영업이 점점 거세지면서 올해 물량은 이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평택세관 특송통관장 엑스선 판독실에서 세관 직원이 엑스선에 비친 중국 직구 물건을 보고 있다. 화면에 ‘디올’의 로고가 보인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이날 평택세관 특송통관장 엑스선 판독실에는 7명의 직원이 각각 4개의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수평과 수직 방향에서 찍은 2개의 엑스선과 폐쇄회로(CC)TV 화면이 떠있었다. 나머지 한 모니터에는 현재 엑스선을 통과하는 물품의 품목·가격 등 세관 신고정보가 실시간으로 떴다.

직원들은 신고정보와 엑스선 화면을 비교하며 짝퉁 등이 의심되는 물건을 걸러냈다. 몇만 원대 제품으로 신고됐는데 명품 로고가 보이거나, ‘의류’라고 신고됐는데 전자기기가 보이면 컨베이어 벨트를 멈추고 살펴보는 식이다. 하나의 물건이 엑스선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5초. 하지만 화면에 여러 개 물건이 동시에 잡히는 데다, 4개의 모니터를 번갈아 봐야 하는 만큼 물건 하나를 살피는 데 단 몇 초만 허용된다.

지난해 평택세관에서 적발된 짝퉁은 8230건으로 전체 중국 짝퉁(6만5000건)의 12.7%에 불과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중국 물건의 절반가량이 평택세관에 들어오는데도 적발률은 10%대에 그친다. 쏟아지는 물량에 비해 사람이 없어 적발에 한계가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직원들은 화장실도 제때 가지 못하고 종일 화면만 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평택세관으로 들어오려다 잡힌 짝퉁 디올백. 적발된 짝퉁은 모두 국내에서 소각 처리된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교묘해지는 짝퉁 숨기기

실질적인 ‘짝퉁’ 검사 시간은 수초 남짓에 불과한데 단속을 피하기 위한 수법들은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평택세관에 따르면 최근 짝퉁 샤넬 백이 통관 과정에서 적발됐다. 해당 물건이 든 상자가 엑스선 검사 장비를 통과할 때 화면에는 여섯 개의 동그란 장식이 붙은 가방만 보였다. 하지만 상자를 뜯어보니 ‘CHANEL’ 글자마다 동그란 금속이 덧대져 있었다. 엑스선으로는 로고가 보이지 않도록 금속들을 붙인 것이다.

평택세관에서 적발된 짝퉁 샤넬백. 엑스선에 로고가 보이는 걸 감추기 위해 동그란 금속을 덧댔다. 관세청 제공
짝퉁들 사이에 섞여 위험 물품들도 반입되고 있다. 평택세관에서 적발된 물건 중에는 직구로 들어오던 중국산 전자충격기도 포함됐다. ‘장난감’으로 신고됐지만 실제로는 20만볼트 전자충격기였다. 국내법은 경찰 허가 조건을 붙여 최대 6만볼트 전자충격기까지 소지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이 제품은 허용치의 3배를 초과했다.

●관세청, 알리 주문정보 통관에 활용 추진

중국 직구 물품이 급증하면서 통관에 병목 현상이 생기자 관세청은 알리에 접수된 국내 주문정보를 받아 통관 검사에 활용하는 방안을 알리와 협의하고 있다. 알리로부터 주문정보를 사전에 받아 물품이 들어오기 전에 의심 품목을 걸러내겠다는 것이다.

세관신고서의 품목, 가격 등은 판매자가 써내기 때문에 통관 검사에서 활용하기에는 신뢰도가 떨어지고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세관신고서에 적힌 ‘5만 원짜리 가방’만 보고서는 명품 짝퉁 가방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하지만 주문정보를 받으면 판매 페이지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관세청은 이렇게 받은 정보에 데이터 처리 기술을 접목해 짝퉁 등을 사전에 가려낼 계획이다. 쿠팡, 11번가와 이 같은 협의를 마친 관세청은 알리를 비롯해 네이버와도 이런 방안을 조율하고 있다.

1000평 규모의 평택세관 특송통관장에 중국 직구 물건들이 쌓여있다. 이곳 2층에는 짝퉁이나 유해 물품으로 의심돼 통관이 보류된 물건들이 보관돼 있다.(사진 우측)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주문정보를 넘겨준 대가로 업체들은 통관 혜택을 받게 된다. 현재는 수입 신고를 30분 안에 자동 수리해주는 혜택뿐이지만, 추후에는 문제가 없는 물건에 한해 검사를 생략해주는 방안까지도 검토 중이다. 그렇게 되면 검사를 위해 2~3일씩 기다리는 시간이 단축된다. 배송 기간이 국내 시장에서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만큼 알리 측도 협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부터 국내 영업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알리는 관세청을 찾아와 알리 상품 통관에 속도를 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다만 알리에게 이런 혜택이 주어지면 국내 유통업계를 파고드는 속도가 더 빨라지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는 알리,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의 국내 진출 상황 대처와 국내 온라인 유통 산업 지원을 맡을 전담 조직을 만든다고 밝혔다.

#평택세관#중국 이커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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