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얼굴 없는 스타 화가 ‘뱅크시’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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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국에서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의 판화 작품 ‘원숭이 여왕’(사진)의 진품 여부를 따지는 소송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재판이 벌어지면 오랫동안 감춰져 있던 그의 정체가 드러날 거란 기대 때문입니다.

뱅크시는 한 번도 신상을 공개한 적이 없는 그라피티 아티스트입니다. 이름도 가명입니다. 1990년대 이후 스텐실 기법을 이용해 건물 벽이나 지하도, 담벼락, 물탱크 등 세계 거리 곳곳에 사회 풍자나 정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남겨 주목받았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예술 테러리스트’라고 일컫습니다.

그라피티란 스프레이나 페인트 등을 이용해 주로 공공장소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자를 남기는 행위입니다. 당연히 불법입니다. 하지만 ‘허락을 구하지 않고 낙서를 한다’는 그라피티 정신이 현대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는 데 적합하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폐허 속 건물이나 전쟁 중인 거리 혹은 베를린 장벽 같은 데서 발견되는 그라피티가 좋은 예입니다. 이 때문에 그라피티를 ‘소리 없는 외침’이라고도 부릅니다.

대표적인 그라피티 작가 뱅크시는 현대 미술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블랙 유머를 담아 자본주의 소비사회나 미술시장, 전쟁과 폭력을 비판해 왔습니다. 초창기에는 쥐를 많이 그려 ‘스텐실 그라피티의 아버지’라 불리는 블랙 르라의 영향을 받은 걸로 보기도 합니다. 이제는 그의 대표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쥐, 경찰, 풍선 등이 스텐실 기법을 통해 간단하게 복제돼 곳곳에 퍼져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네이팜’은 디즈니와 맥도널드의 두 캐릭터인 미키마우스와 로널드 맥도널드가 알몸으로 울며 거리를 달리는 소녀를 양쪽에서 붙잡고 웃으며 행진하는 그림입니다. 1972년 퓰리처상까지 받은 사진 속 주인공인 이 소녀는 베트남전 당시 네이팜탄을 맞고 살이 타는 고통과 죽음의 공포로부터 도망치다 찍혔습니다. 뱅크시는 이 작품을 통해 전쟁의 참상이 누구의 책임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의 정체는 수십 년 동안 오리무중이지만, 1990년대 이후 자신의 웹사이트를 열면서 작품이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뱅크시가 본인의 작품 일부에만 서명을 하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원숭이 여왕’(2023년)도 한정판 총 750개 중 150개에만 서명이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방식은 위조품 유통을 불러오면서, 진품 인증을 요구하는 수집가들이 늘었습니다. 뱅크시는 2008년 ‘페스트 컨트롤’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작품 판매를 주관하고 진품 인증서를 발급하고 있지만, 인증서 발급이 지연되자 소송이 걸린 겁니다.

뱅크시는 이제는 ‘익명성’ 자체가 유명세가 되었습니다. 영국에는 뱅크시 투어가 있고, 그의 작품은 미술시장에서 엄청난 고가에 팔립니다. 익명의 예술 테러리스트가 미술계의 스타가 된 아이러니한 현실입니다.

#뱅크시#얼굴 없는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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