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는 세월 동안 매일같이 반찬 봉사를 해왔다는 의인의 이야기를 듣고자 시흥시체육관에 들어섰다. 협소한 지하 식당. 테이블 한쪽에는 반찬이 담겨있는 도시락 30여 개가 즐비해 있었다. 나눔자리문화공동체 이상기 대표(63)는 들어오는 전화를 받느라 분주했다.
“엄마, 나연이가 갈 거야. 거기서 기다려.”
이 대표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픈 곳은 없느냐며 안부를 물었다. 이전부터 이 대표가 살뜰히 챙기던 시흥시 신천동 주변 독거 어르신과의 통화였다. 전화를 끊고 반찬을 전달할 명단을 정리하고 나서야 이 대표는 한숨을 돌렸다. 이어 그는 공동체 회원 8명과 모여 가족같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식사를 하며 허기를 달랬다.
좁지만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지하 공간. 이 대표는 30년 넘게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거의 매일 반찬 봉사를 해왔다. 그는 “며칠 전 제주도로 3일 여행을 다녀왔는데,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휴가를 가본 거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주중이면 오전 7시 30분, 주말에는 6시부터 봉사를 시작해 저녁 6시에 봉사 일과를 마무리한다. 반찬은 동네 독거 어르신이나 조손가정 등으로 배달된다. 이 대표는 하루에 약 8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직접 반찬을 만들고 주에 한번은 직접 전달을 하기도 한다. 또 그는 동네 독거 어르신들의 말동무이자 딸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먹는 데서 정 난다”
이 대표는 하루에 70가구, 한 달에 1000가구씩 전달할 반찬을 만들어왔다. 하루도 빠짐없이 반찬 봉사를 매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있을까.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답했다. 옛날부터 빵 한 쪽도 이웃들과 나눠 먹는 게 습관이 된 이 대표는 학창 시절에도 요리를 하면 친구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그는 “먹는 데서 정이 나는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봉사를 하면서 가까워진 한 조손가정에 대해 언급했다. 아기를 낳자마자 친모가 하늘나라로 떠나 조부모가 남은 아이를 돌봐야 했던 조손가정이 있었다. 이 대표는 아이가 갓난아기였던 시절부터 반찬 배달을 하러 가며 관심과 사랑을 쏟았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 대표 반찬의 손맛에 익숙해진 아이는 아직까지도 “이모가 해 준 김치가 제일 맛있다”라고 한다. 이 대표는 “너무 착하고 예쁘게 자라줘서 기특하다”고 했다.
“딸이 아프면서 봉사 꾸준히 하기 시작해…”
조손가정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며 반찬 봉사를 해온 이 대표에게는 남모를 아픔도 있었다. 그는 “사실 딸이 미숙아로 태어나 많이 아팠다”라면서 과거를 회상했다. 기도하러 갔던 곳에서 이 대표는 한 목사님으로부터 ‘딸 아이가 건강해질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이 한마디가 당시 이 대표에게는 너무나도 큰 ‘위안’이 됐다.
이후 그는 꾸준히 봉사를 하러 나가기 시작했고, 힘든 시기에 그의 딸은 기적처럼 건강해졌다. 이 대표의 딸이 고등학생쯤 됐을 때는 ‘나눔자리문화공동체’라는 지역 봉사 단체를 만들었고, 더 열정적으로 봉사에 나섰다.
이 대표는 아동, 청소년, 장애인, 독거 어르신 등을 상대로 반찬 봉사와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나눔을 실천했고, 현재까지 봉사는 그의 일상이 됐다. 그가 반찬 봉사를 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위생’이다. 대부분의 반찬을 삶아서 배달함으로써 식중독 발생률을 차단한다. 또 직접 집을 찾아가 요리를 하거나 현장에서 국수를 삶는 등 음식을 만들어 이웃에게 나누는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반찬 봉사는 ‘소통’이다
이 대표가 봉사에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소통’이다. 그는 “사실 반찬 전달이 목적은 아니다”라며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을 찾아가서 말벗도 되어드리고 제대로 사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주목적이다”라고 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이 동네에는 자식이 있어도 돌보지 않아 고독사하시는 어르신들이 많다고 한다. 그는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안부를 묻는 것이 반찬 봉사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그는 봉사를 진행하며 가장 어려운 점은 기금 마련이라면서도 단체에 후원을 직접적으로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치솟는 물가에 식비를 감당할 수 있는 비결이 따로 있을까. 그는 공모사업을 통해 지원금을 받거나 봉사자들의 기부로 식비를 감당한다고 설명했다. 이 외 추가 비용은 이 대표와 봉사회원들의 사비로 충당하기도 한다. 직장 일을 하고 있지 않는 이 대표는 오로지 ‘봉사’만을 위해 희생과 헌신의 정신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체의 대표로서 봉사를 하다보니 가끔은 그를 아니꼽게 보는 사람도 있다. ‘뭐가 생기니까 저렇게 하지’ 혹은 ‘좁은 집에 살면서 돈도 안 벌고 저런 봉사를 하나’ 등의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그냥 내 자신이 행복하면 되는 거다”라고 밝혔다.
“날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행복…나눔만이 인생의 낙”
이 대표가 반찬 봉사를 하며 딸처럼 자주 찾아뵙던 어르신이 있었다. 경로당 회장이었던 어르신은 90세가 넘으면서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입원했다. 이 대표가 요양원을 방문했을 때 어르신은 놀랍게도 그를 알아봤다. ‘내가 누구냐’고 물은 이 대표에게 어르신은 “누구긴, 내 딸 이상기지”라고 답했다. 이 대표는 “다른 사람은 못 알아봐도 나를 알아보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다”라며 어르신과의 추억을 회상하기도 했다.
‘천원 식당’ 만들어 누구든지 먹을 수 있는 밥집 만들고 싶어…
이 대표는 반찬 봉사 외에도 새롭게 해보고 싶은 봉사가 있다. 바로 1000원만 내면 누구든지 먹을 수 있는 식당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공짜로 먹을 수 있는 식당을 만들면 자신이 가난하다는 생각에 특히 청소년과 청년들이 잘 오지 않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 때문에 그의 계획은 일반인은 5000원 이상 자유롭게 내고, 아동이나 청소년은 1000원만 내면 점심을 먹을 수 있는 밥집을 만드는 것이다.
끝으로 그는 봉사의 의미에 대해 ‘정’을 나누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 대표는 “봉사에 한 번 손을 대면 마약과 같다”라며 “흥미를 느끼면 그만큼 정이 넘치는 사람들끼리 부대끼는 것을 멈출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봉사 회원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재주는 다양했지만, 한곳에 모여 어르신들을 위한 방석도 만들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반찬도 만드는 나눔자리문화공동체는 따뜻함과 정이 넘쳐났다. 이 대표는 “체력적으로 힘들 것이라 생각하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반찬을 만들 때면 오뚝이처럼 힘이 그냥 생겨난다”라면서 “함께해서 즐겁다”라고 덧붙였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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