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불법 카메라) 사러 누가 여기로 와요. 알리(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에서 직구(직접 구매)하지.”
1일 오후 2시경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내 한 전자제품 판매장. 1980년대부터 이곳에서 장사했다는 유모 씨(67)가 이렇게 말했다. 상가 내부엔 ‘몰래카메라’ 등이 적힌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지만, 실제로 진열해둔 매장은 찾기 어려웠다. 다른 점포 사장 윤모 씨(58)도 “정부가 계도를 많이 해서 여기선 (변형 카메라를) 잘 안 판다”라며 “인터넷에서 사는 게 더 빠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취재팀이 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 이커머스에서 특정 검색어를 입력하니 변형 카메라가 수십 종 팔리고 있었다. 유튜버 한모 씨(49·구속)가 4·10 총선을 앞두고 사전투표소 등 41곳에 설치한 것처럼 충전기 어댑터로 꾸민 카메라도 2만~4만 원이면 살 수 있었다. 정부가 국내 전자제품 판매장에서 계도에 집중하는 사이, 해외 사이트에서는 클릭 몇 번이면 변형 카메라를 직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3일 안에 무료배송’… 해외 사이트서 ‘몰카’ 직구
변형 카메라를 파는 해외 사이트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영국 한 사이트는 향수와 디스펜서, 화분, 휴지곽 등으로 위장한 변형 카메라를 50종 넘게 홍보하고 있었다. 커피컵 뚜껑에 변형 카메라를 설치해 16GB(기가바이트)의 저장 공간을 제공한다는 한 제품은 276유로(한화 약 40만 원)에 구매가 가능했다. 이 쇼핑몰은 “한국은 3일 만에 배송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불법 카메라 탐지업자들은 변형 카메라를 구하는 경로가 해외 직구 사이트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탐지업체를 운영 중인 김모 씨(55)는 “과거엔 정부 인증을 받은, 펜이나 손목시계 등으로 위장한 카메라가 많았는데 최근엔 해외에서 들어오는 미인증 변형 카메라가 90% 이상”이라고 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한 씨가 사용한) 충전기 어댑터형 카메라는 오히려 찾기 쉬운 편”이라며 “사무용품이 많은 사무실에서 카메라를 찾으려면 정말 모든 물건을 의심해야 해서 어렵다”고 했다.
변형 카메라 수입 규모는 해마다 늘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초소형 카메라’ 품목 분류를 신설한 2022년엔 약 7465kg에 해당하는 변형 카메라가 수입됐다. 금액으론 242만2000달러(약 32억 원) 규모다. 지난해에는 약 299만 달러(약 40억 원) 상당의 변형 카메라 1만2818kg이 국내에 수입됐다. 올해 1분기(1~3월) 수입량은 4832kg으로, 이 추세가 이어지면 지난해보다 수입량이 많아지게 된다.
● 변형 카메라 관리법, 또 국회서 폐기 우려
변형 카메라의 제조와 수입, 구매 등 이력을 관리하고 미등록 변형 카메라를 취급하면 처벌하는 ‘변형 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안’은 2015년 19대 국회 때 처음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대와 21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총 4건 발의됐지만 모두 소관 상임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카메라 관련 기술이 자동차, 의료,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산업계 우려 때문이었다.
변형 카메라는 범죄에 악용될 위험이 큰 만큼 매매 이력 등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에선 변형 카메라를 판매한 업체의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의 법원 결정도 나오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서는 지난해 12월 한 50대 남성이 수건걸이 등으로 위장한 카메라로 미성년자를 불법촬영하자 피해자 측이 해당 카메라를 판매한 사이트 아마존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아마존 측은 “판매자가 사용목적은 미처 예상할 수 없다”며 소송 각하를 요청했지만 법원은 “잠재적 위험성을 미리 알았을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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