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양자물리학을 연구한 물리학 박사 출신으로 헬무트 콜 전 총리에게 발탁되면서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2005년부터 2021년까지 4번 연속 집권하면서 16년간 총리로 재임합니다. 이 때문에 메르켈 총리 재임 중 태어난 독일의 청소년들은 그녀가 종신 총리인 줄 알았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입니다.
메르켈 총리는 재임 기간 경제 위기와 난민 문제, 유럽연합(EU)에서 영국이 탈퇴한 ‘브렉시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등 격동의 시기를 헤쳐 나가며 독일과 EU를 이끌었습니다. 그가 막 총리로 취임할 당시 독일은 ‘유럽의 병자’로 불릴 정도로 경제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11%에 육박하던 독일의 실업률은 메르켈 집권 후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2배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여성이나 난민, 고령층을 중심으로 고용이 크게 확대돼 25∼64세 독일 여성의 노동 참가율은 OECD 주요 7개국 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메르켈 총리의 과감한 리더십은 2008년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릴 때 독일을 경제 불황으로부터 지켜냈습니다. 2016년 영국이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가결하고, 2020년 1월 유럽의회에서 영국 탈퇴가 확정되는 국제 정세 속에서 EU의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에도 기여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를 휩쓸 때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와 함께 과감한 정책을 초기에 도입했습니다. 한편 메르켈은 총리가 되고 나서도 관사가 아닌 작은 아파트에서 남편 요아힘 자우어 교수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퇴근하면 정부 청사 근처의 오래된 슈퍼에서 일주일에 한 번꼴로 장을 봤다고 합니다. 언젠가 우리나라 신문에도 메르켈 총리가 직접 장을 보는 사진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장을 보는 그의 카트에 실려 있던 오렌지나 밀가루, 로션과 주방용 타월 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과 관련해 영국 BBC는 “남성 클럽과 같았던 독일 정치를 정책 토론의 장으로 변화시켰다”고 평가했습니다. 포퓰리즘과 극단주의를 경계하고 정책 토론에 중점을 두면서 조용하고 통합적인 리더십을 행사했다는 겁니다.
최근 선거가 다가오면서 상대에 대한 원색적 공격과 비방이 기승을 부리고, 대파 논란 등이 불거지는 걸 보면서 메르켈 전 총리가 떠올랐습니다. 이번 총선을 통해 그와 같은 지도자가 나타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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