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근무했던 법원 앞에 법무법인을 차린 뒤 ‘전 ○○지법 판사 출신’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가 징계를 위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 변호사 수가 급증하면서 수임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판검사 출신 전관’을 앞세운 변호사 광고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오자 대한변협이 엄정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한변협은 지난달 25일 상임이사회를 열고 이렇게 광고 중인 변호사 A 씨와 A 씨가 소속된 로펌을 조사위원회에 회부하기로 결정했다. A 씨를 ‘○○법대 판사 출신’이라고 소개 중인 한 지하철역의 음성 광고 역시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부적절한 광고’란 취지의 민원이 다수 접수됐고, 시정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A 씨는 “간판은 시정권고를 반영해 바꿀 예정이고, 음성 광고는 실제 판사 경력을 담은 것으로 변호사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변호사법에 따르면 변호사는 학력과 경력 등을 광고할 수 있지만 전관예우 암시 등 소비자가 ‘부당한 기대’를 가질 수 있는 광고는 할 수 없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변호사윤리장전과 변호사광고규정은 학력과 경력을 표기할 때 품위유지 의무와 내용, 절차 등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며 “이에 어긋나는 광고는 기재된 내용이 사실이더라도 징계 대상”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대한변협은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사건을 맡을 것처럼 홍보해 수임료를 받은 뒤 경력이 짧은 다른 변호사에게 맡긴 한 법무법인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기도 했다. 이 로펌은 지난해 3월 한 의뢰인에게 “검사장 출신 및 경찰 출신 전문위원이 사건을 담당한다”고 설명한 뒤 수임료 2200만 원을 받았다. 그러나 의뢰인은 약속된 법률 서비스를 받지 못하자 “상담 내용과 다르다”며 계약을 해지했다. 로펌 측은 ‘해지 및 환불은 해줄 수 있지만 향후 어떠한 이의 제기도 할 수 없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써달라고 했고, 의뢰인이 이를 거부하자 돈을 돌려주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전관을 앞세운 사건 수임은 최근 변호사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2014년 1만8708명이던 등록 변호사 수는 올해 3월 기준 3만4851명으로 10년 새 2배 수준이 됐다. 실제 ‘전관예우’를 포털사이트에 검색하기만 해도 ‘전관예우 법무법인 ○○’ ‘전관예우 ○○ 변호사’ 등 대놓고 전관예우를 선전하는 광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전관’은 이름만 올리고 실제 변론에는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수도권 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결국 피해는 비싼 수임료를 내는 소비자 몫이고, 사법 신뢰 역시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다. 전관 광고 징계가 과태료 수준인 경우가 많다 보니 이를 무시하고 영업을 계속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선 광고규정 위반 시 최소 1∼3년의 정직이나 제명 등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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