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확대해 134곳서 5000명 활동
의료공백 탓 곳곳에서 통보식 차출
정부 “이달내 교육 프로그램 제공”
간호사協 “법적 지위 조속 명문화를”
“지원한 적도 없는데 갑자기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로 선발됐다고 하더라고요. 교육도 못 받고 바로 수술실에 투입됐습니다.”
충북의 한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는 5년 차 간호사는 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이탈 후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는 이유로 2주 전 차출돼 PA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부가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PA 간호사에게 기존에 전공의 등이 하던 업무 89개를 허용한 지 8일이면 한 달이 된다. 하지만 현장에선 업무 범위 등을 둘러싼 혼선과 우려가 여전해 정착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 “교육 없이 저연차 투입도”
정부는 지난달 8일 ‘간호사 업무 시범사업 보완 지침’을 시행하고 심폐소생술과 응급 약물 투여 등 89개 업무를 PA 간호사에게 허가했다. 과거 필수의료 분야에서 암암리에 전공의 업무를 대신해 왔던 PA 간호사 업무를 양성화한 것이다. 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기준으로 대형병원과 공공의료기관 134곳에서 PA 간호사 약 5000명이 활동 중이다.
문제는 제대로 된 교육 없이 PA 간호사 업무에 투입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임상 경력 3년 이상’ 간호사를 PA 간호사로 전환할 것을 권고했지만 일부 병원은 ‘인력이 부족하다’며 저연차 간호사를 PA 간호사로 전환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고연차 간호사를 모두 수술실 PA 업무에 투입하는 바람에 병동에 저연차만 남는 경우도 생긴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간호사는 “병동에 저연차만 남아 있는데 위급 상황에 적절한 대응이 어려울 것 같아 불안하다”고 했다.
복지부는 병원 내 ‘간호사 업무범위 조정위원회’를 만들고 여기서 간호사 의견을 반영해 PA 업무를 조율하라고 했지만 현장에선 “무급휴직이 싫으면 PA 업무를 맡으라”는 식으로 통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법적 책임 소재도 여전히 논란이다. 정부는 의료사고 발생 시 ‘병원장 책임’이라고 적시했지만 처방 등에 간호사 이름이 남는 만큼 환자 측에서 소송을 제기할 여지는 여전히 있다. 부산의 한 종합병원 간호사는 “시범사업이다 보니 나중에 법적으로 면책될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했다.
● 정부, PA 간호사 제도화 수순
병원들은 의료 공백 사태 장기화를 예상하고 PA 간호사들이 의사 대신 임시 처방을 내거나 의무 기록 초안을 작성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편하고 있다. 고려대의료원은 4일부터 시스템을 개편해 간호사가 의사 대신 임시 처방을 내거나 의무 기록을 작성하면 나중에 교수 등이 한꺼번에 승인하도록 했다. 이 병원 간호사는 “과거 일부가 암암리에 교수나 전공의 아이디로 의무기록시스템에 들어가 처방을 내곤 했는데, 이제 정식으로 낼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병원도 처방과 의무 기록 모두 PA 간호사가 임시로 저장하면 의사가 확정 또는 서명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대형병원 등은 조만간 7000여 명까지 PA 간호사를 늘릴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여당도 PA 간호사 제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당은 지난달 28일 PA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포함된 간호사법을 발의했다. 복지부는 이달 중 PA 간호사를 위해 수술, 내과, 외과, 응급 중증 등 4개 분야의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할 방침이다.
하지만 간호사 사이에선 복지부가 의료 공백 사태가 마무리된 후 다시 제도화 방침을 뒤집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정부가 2010년경부터 PA 제도화를 시도했지만 의사단체에 밀려 번번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한국전문간호사협회 관계자는 “PA 간호사의 법적 지위를 조속히 명문화해야 간호사들이 불안을 버리고 업무에 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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