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與 총선 참패 원인 꼽혀
의사들 ‘원점 재검토’ 더 강력 요구
복지부, 브리핑 취소하고 숨고르기
환자단체 “이제라도 국회가 중재를”
정치권과 의료계에선 여당의 4·10총선 참패로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 동력이 약화될 것이란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당장 의사들은 “정부가 무리하게 2000명 증원을 밀어붙여 선거 패배를 자초했다”며 원점 재검토를 더 강하게 요구하는 모습이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의대 증원 1년 유예 및 책임자 경질’을 요구하는 등 여당에서도 정부가 입장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 “무리한 의대 증원으로 총선 패배”
의대 교수들의 모임인 전국의대교수협의회는 11일 “총선 결과는 정부의 독단과 독선 및 불통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며 “정부가 총선 전 선전포고하듯 의대 증원 2000명을 발표하고 의료계의 우려에도 지금까지 이 숫자를 고집하고 있다”는 성명을 내고 정부를 비판했다. 이상호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대외협력위원장도 “총선 결과는 절차를 무시하고 비민주적으로 의료정책을 밀어붙인 것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의사단체 내부에선 압승한 더불어민주당 역시 공공의대 설립 및 의대 증원을 주장해 왔다는 점에서 착잡한 분위기도 있다. 임현택 의협 차기 회장은 개표가 한창 진행 중이던 이날 새벽 “마음이 참 복잡하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반면 “의사단체가 통일된 안을 가져오기 전까지 그대로 진행하겠다”던 정부는 한풀 꺾인 분위기다. 보건복지부는 전날(10일) 오후 9시경 11일 오전 11시로 예정했던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을 갑자기 취소했다. “특별한 안건이 없다”는 이유였지만 복지부 안팎에선 “출구조사가 여당 참패로 나오자 총선 후 후폭풍을 지켜보며 입장을 다시 정리하려는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복지부는 12일 브리핑도 안 하기로 했다.
● 안철수 “1년 유예하고 책임자 경질해야”
정치권과 의료계에선 의료 공백 장기화가 총선 참패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만큼 정부가 ‘2000명 증원’을 계속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안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대 증원을 1년 유예하고 단계적 증원 방침을 정한 뒤 국민 분노에 화답해야 한다”며 “의대 증원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책임자들의 경질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정부·의사·환우회·국제기구가 모인 의료개혁 협의체에 전권을 맡겨 결론을 내게 하자”고 제안했다.
의사들 사이에선 조만간 정부가 유연한 태도로 대화를 제안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홍윤철 서울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의대 증원을) 밀어붙인 사람들이 물러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조만간 의사단체와 대화의 장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대형병원의 한 교수는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계속 버티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다만 정부와 의사단체 간 대화가 당장 이뤄지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의협은 ‘강경파’와 ‘온건파’가 내부에서 주도권 싸움을 벌이느라 통일된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 또 대통령실과 내각 정책 라인이 교체될 경우 정부 내부에서도 정비 시간이 필요하다.
● “이제라도 국회가 중재 나서야”
하지만 ‘2000명 증원’ 방침을 바꾼다면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대학별로 다음 달까지 수시 모집 요강을 발표해야 하는데 그 이후 정원을 조정할 경우 수험생과 학부모의 극심한 혼란과 줄소송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도 이달 8일 브리핑에서 “(대학별) 신입생 모집요강이 정해지기 전까지 물리적으로 변경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동안 선거가 목전이란 이유로 개입하지 않았던 국회가 정부와 의사단체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11일 성명을 내고 “이제 국회가 나서서 사태를 중재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도 이날 논평을 내고 “긴급 국회를 소집해 장기화하는 의사 진료 거부 사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한 초당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료계에선 민주당이 압승한 만큼 이재명 대표가 언급한 의료 공백 해법을 주목하는 분위기도 있다. 이 대표는 선거 과정에서 “각계가 참여한 공론화 특별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했고 “(증원 규모는) 400∼500명이 적당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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