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저출산 관련 취재차 딩크(DINK)족이라 밝힌 30대 기혼여성을 인터뷰했다. 딩크란 Double Income, No Kids의 앞 글자를 딴 말로, 정상적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적극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맞벌이 부부를 뜻한다. 여성에게 취재를 위한 질문임을 전제로 조심스레 물었다.
기자: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여쭐게요. 어째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하셨을까요?”
여성: “아, 저도 실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늘 궁금해서요. 기자님께서는 어째서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셨을까요?”
상대방의 기습적인 반문에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잠시 우물쭈물했다. 인터뷰이에게 질문을 받은 것도 당황스러웠거니와, ‘왜 아이를 네 명이나 낳았느냐’는 질문이면 모를까 ‘왜 아이를 낳았느냐’는 질문은 받아 본 적도, 답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짧은 고민 끝에 이렇게 답했다. “제가 낳을 땐 다들 으레 낳았거든요.”
● 으레 낳던 사회에서 으레 낳지 않는 사회로…
정말이지 그랬다. 13년 전 결혼하고 첫 아이 임신할 때만 해도 출산은 결혼한 부부가 ‘으레 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기자에겐 이유나 결심이 필요하지 않았다. 출산에 관한 고민이라고 하면 흔히 말하는 ‘자녀 계획’ 정도였다. 몇 명을 낳을까, 몇 살 터울로 낳을까 등.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주변 지인들 이야기만 들어봐도 아이는 으레 낳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결혼 후 한동안은 ‘으레 낳지 않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출산 고민도 달라졌다. 몇 살 터울로 낳을까가 아니라 언제 낳을까, 몇 명 낳을까가 아니라 낳긴 낳아야 할까.
생각해 보면 요새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할 이유’나 ‘출산을 유예해야 하는 이유’는 넘쳐난다.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도 아마 어렵지 않게 서너 개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아이를 낳아야 할 이유’는? 넷이나 낳은 기자도 머뭇거렸던 것처럼 선뜻 생각나지 않는다.
지난 세월 출산은 지극히 당위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유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젊은이들에게 출산은 더 이상 당연한 일이 아니다. ‘설문조사 했더니 아이는 낳아도 되고 안 낳아도 된다고 답한 청년들이 많았다’는 소식은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다. 한 20대 후배는 “요즘은 ‘아이를 꼭 낳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 별종 취급을 받는다”며 “그렇게 말하는 친구를 보면서 ‘도대체 이유가 뭘까, 희한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연했던 것이 급격하게 당연하지 않은 게 된 것. 과거엔 출산하는 절대다수 속에서 ‘출산하지 않는 이유’가 필요했다면, 점점 출산하지 않는 다수 속에서 ‘출산할 이유’ 혹은 ‘출산할 결심’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달까.
어쩌면 앞서 인터뷰한 여성은 기자의 질문이 외려 더 새삼스럽다고 느꼈을 수 있다. ‘아니,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이유는 너무 잘 알려져 있고 상식인데, 왜 이런 당연한 질문을 하는 거지?’
● 10명 중 3명만 결혼 2년 내 출산…‘결혼=출산’ 공식 깨지고 있어
과거 정부는 ‘그래도 결혼하면 아이는 낳는다’며 신혼부부 혜택에 집중해 왔다. 담당 부처 공무원으로부터 “아이 낳을 것도 아닌데 결혼을 왜 하겠어요?”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결혼하고 바로 아이를 갖는 부부는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2022 신혼부부 통계’를 보면 일단 결혼해도 아이는 낳지 않는 부부가 절반에 가까웠다. 2022년 11월 1일 기준 혼인 신고한 지 5년 이내 부부 가운데 자녀가 없는 비중이 46.4%에 달했다.
출생아 상황을 봐도 비슷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부모가 결혼하고 2년 내 태어난 아이는 전체 출생아의 40.3%였는데, 2022년 31.5%로 떨어졌다. 반면 결혼 후 5년이 지나 태어난 아이 비율은 2012년 23.3%에서 2022년 27.5%로 올랐다. 출산에 대해 갈수록 장고하는 추세란 이야기였다. 이 기간 출생아 수가 반토막이 난 탓에 출생아 수로 따지면 그 차이는 더 크다. 2012년 부부 결혼 후 2년 내 태어난 아이가 19만3613명이었다면, 2022년에는 7만5767명으로 쪼그라들었다.
● 결혼만 하지, 출산 왜 해? 이 질문 답할 수 있나
결혼과 출산은 동반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청년들을 인터뷰해 보면 그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확연히 달랐다. 결혼에 대해선 대부분 “하면 하죠, 뭐”라는 등 큰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출산의 경우 “낳을 가능성이 높지만 솔직히 엄두는 안 난다”거나 “지금은 낳고 싶지만 살아보고 결정하겠다” 등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가 많았다. 그만큼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었다. 한 20대 취업준비생은 “동거가족의 권리를 인정한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출생아 수가 늘지 모르겠다. 문제는 가족의 형태가 아니라 부담스러운 출산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출산의 부담과 상대적으로 낮은 결혼의 부담, 그로 인해 ‘무자녀 부부’가 늘어난다면, 그는 ‘아이와 가족이 행복’이라는 현 정부의 인구정책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흔들 가능성이 있다. 부부만 해도 가족이고, 부부끼리 재밌게 할 수 있는 일들은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다. ‘굳이 왜 출산을?’ 많은 부부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질문에 기자처럼 제대로 된 답을 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현실적인 여건이 개선된다 한들 출생아 수는 더 줄어들 것이다. 결국 생각과 가치관을 이기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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