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목포시에 사는 최모 씨(65)는 지난해 말 전립샘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올 2월 26일 광주의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받기로 했지만 2월 20일 시작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병원 이탈 여파로 수술이 취소됐다. “다시 일정을 잡아 연락을 주겠다”던 병원은 4월인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최 씨는 “이러다 암이 전이되는 건 아닌지 두렵다”며 “정치권이 사태 해결을 위해 목소리를 내달라”고 부탁했다.
이달 20일이면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한 지 두 달이 된다. 의료 현장의 환자, 의사, 간호사, 119구급대 등은 ‘번아웃’ 및 그로기 상태에 몰렸다. 그사이 4·10총선도 치러졌다. 현장에선 “이제 정말 정부와 국회가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할 때”라는 지적이 분출하고 있다.
박준범 순천향대 서울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같은 조로 근무하던 전공의 3명이 그만두면서 요즘 밀려드는 환자들을 혼자 감당하고 있다. 같은 병원 의사들은 도저히 자리를 비울 수 없어 화장실도 최소한으로 가려고 근무 시간에 물을 거의 안 마시는 이들도 있다. 박 교수는 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장 손을 써야 하는 환자들이 있는데 의료진이 부족해 중증 순서를 가려내야 할 때가 가장 안타깝다”며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방 병원은 더 심각하다. 경남의 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외래, 입원, 응급실 당직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체력적으로 한계”라며 “24시간 당직 이후 잠을 못 자고 다시 외래 진료를 보는 날도 많다”고 말했다. 지방거점국립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지방은 대형병원 의존도가 더 높은데 고령 환자가 많다. 의료진이 부족해 다 수용을 못 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가장 먼저 환자들에게 달려가는 구급대원들도 암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경남의 6년 차 구급대원은 “예전에는 대부분 현장 도착 30분 내 병원 이송을 끝냈다. 전공의 이탈 뒤에는 병원을 찾지 못해 길 위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했다. 충청 지역 119구급대 관계자는 “응급병상을 찾지 못하는 소위 ‘응급실 표류’에 직면하면 구급대원들이 이전보다 훨씬 큰 심리적 압박을 느끼는 상황”이라고 했다. 충남의 한 병원 관계자는 “응급센터가 환자를 돌려보내는 빈도가 갈수록 늘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 재정난도 심화되고 있다. 황수현 창원경상국립대병원장은 “은행 대출로 직원 1700여 명의 급여를 감당하는 실정”이라며 “대출마저 막히면 병원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다 4월 한 달간 무급 휴가를 쓰게 된 간호사 김모 씨는 “다음 달까지 무급 휴가를 연장해야 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생계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이들은 정부와 정치권 등이 나서서 의정(醫政) 타협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책에는 합리적인 내용도 있는데 ‘의대 2000명 증원’에 막혀 전체 논의가 멈췄다”며 “정부가 숫자에 매몰되지 말아야 하려는 다른 의료 개혁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은 “‘증원 백지화’와 ‘의료계 통일안’을 언급하는 건 사실상 대화를 하지 말자는 의미”라며 “그런 조건 없이 빨리 마주 앉아야 한다”고 했다. 왕규창 의학한림원장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의료대란을 막으려면 지금까지처럼 자기 주장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서로의 의견을 듣는 자세로 대화에 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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