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을 잘 모르는 사람도 아마 ‘힉스입자’라는 말은 한 번쯤 들어봤을지 모르겠습니다. 우주 탄생의 원리를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가설인 ‘표준 모형’에 등장하는 소립자 17종 중 가장 마지막 입자입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의 입자를 원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원자도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와 양성자 및 중성자 등 더 작은 입자로 구성돼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양성자와 중성자조차도 더 작은 입자로 쪼갤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표준 모형에 따르면 우리가 아는 우주 만물은 12개 소립자와 4개의 매개 입자로 구성됩니다. 그런데 이 모형이 성립하려면 소립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가 존재해야 합니다. 1964년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피터 힉스(1929∼2024·사진)는 ‘모든 입자에 질량을 부여한 가상의 입자’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논문에서 전자도 양성자도 아니면서 이러한 입자의 질량을 부여하는 특정한 상호작용을 담당하는 존재, 즉 힉스입자의 존재를 최초로 이론화하고 예측했습니다.
힉스입자는 눈으로 볼 수 없어 종종 바람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보이진 않지만 물체가 흔들리는 걸 보면 바람의 존재를 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힉스입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았습니다. 천재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조차 과거에 힉스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돈을 걸었다가 100달러를 잃었을 정도입니다.
힉스입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논문이 나오고 약 50년이 지난 뒤 확인됩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가 2012년 세계 최대 규모의 대형강입자충돌기 실험을 통해 힉스입자의 존재를 확인한 것입니다. 6000여 명의 과학자가 참여할 정도의 대규모 실험이었는데 이를 통해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혁명적으로 바뀌었습니다. 힉스 교수는 2013년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힉스 교수는 8일 95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은퇴 후 거의 은둔하다시피 말년을 보냈는데, 짧게 아프다 편안하게 숨을 거뒀다고 합니다. 어쩐지 지구인들에게 우주에 대한 비밀의 문을 살짝 열어주고 자신은 원래 있던 더 넓은 우주로 돌아간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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