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미래, ‘숲 학교’에서 자란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17일 03시 00분


‘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4〉숲, 상상력 펼치는 치유의 캔버스

9일(현지 시간) 영국 링컨시 한 ‘숲 학교’의 신체활동 수업 모습. 링컨=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9일(현지 시간) 영국 링컨시 한 ‘숲 학교’의 신체활동 수업 모습. 링컨=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안전을 위한 규칙만 잘 지키면 아이들은 이곳에서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9일(현지 시간) 영국 중동부 링컨셔주 링컨시에 있는 한 숲속. 아들을 이곳에 있는 ‘숲 학교’에 6년째 보내고 있는 타미 돌링 씨는 “숲 학교의 장점은 자유로운 교육”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돌링 씨의 아들 이든 군(12)은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나무를 타고 있었다. 교사 캣 수터 씨가 “나무를 오를 때 어떻게 해야 안전하다고 했는지 기억하느냐”고 묻자, 이든은 “나뭇가지가 팔목보다 굵은지 확인하면 된다”며 “양손과 양발 4개 중 3개는 나무에 딛고 있으면 안전하다”고 답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나무를 타고 얼굴엔 진흙을 묻히며 노는 이곳은 영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숲 학교 풍경이다. 1950년대 북유럽 등에서 시작된 숲 학교는 자연에서 직접 체험하면서 배우는 데 방점을 두고 있는 교육 방식이다. 영국에선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이 주로 참여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엔 16세 학생까지 대상이 확대됐다. 런던에서 숲 학교를 운영하는 엘라나 노세다 씨는 “숲 교육은 건강뿐 아니라 감정 표현과 소통 능력, 나아가 상상력을 길러준다”고 했다.

나무-흙과 교감하며 ADHD 떨쳐… 英 ‘숲학교’서 삶의 지혜 배워


‘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4〉숲, 상상력 펼치는 치유의 캔버스
어린이 교육 목적으로 1994년 시작
방과후 수업 형식, 英전역에 수백곳
장작으로 악기 만들고 진흙 부엌도… “자연과 교감속 공동체 의식 키워”

9일(현지 시간) 영국 링컨셔주 링컨시 인근 숲 학교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놀고 있는 모습. 링컨=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9일(현지 시간) 영국 링컨셔주 링컨시 인근 숲 학교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놀고 있는 모습. 링컨=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영국 링컨셔주 링컨시에서 차량으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올드 우드 오가닉’ 숲. 9일(현지 시간) 찾은 이곳에서는 축구장 2개 크기만 한 약 1만2140m²에 달하는 부지 곳곳에 숲 학교 ‘랜드 앤드 리프 컬렉티브’ 학생들이 만들어 놓은 놀이기구가 눈에 띄었다.

숲 학교 교사 캣 수터 씨가 나무 장작으로 만든 악기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도끼로 나무 자르는 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쳤을 뿐인데 이런 악기가 만들어질 거라곤 아무도 상상을 못했어요.” 나무와 나무 사이에 가로로 줄을 걸어 길이와 두께가 다른 장작 7개를 매달아 놓은 이 ‘천연 장작 악기’를 나무 막대기로 두드리니 마치 실로폰 소리와 같은 나무음이 울려퍼졌다. 수터 씨는 “한 학생이 장작을 패서 바구니에 던져넣다가 서로 다른 소리가 난다는 사실에 착안해 만든 악기”라며 “학생의 관심을 따라갔을 뿐인데 생각지도 못한 결과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숲 학교 곳곳에는 ‘진흙 부엌’ ‘나뭇가지 동굴’ ‘물길’ 등 학생들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놀잇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 대인기피증 떨쳐낸 숲 학교 아이들

영상 10도의 숲속은 한국의 초겨울 날씨처럼 쌀쌀했다. 전날 비가 내려 진흙탕이 된 바닥은 갯벌처럼 발이 푹푹 빠졌지만 아이들은 개의치 않고 놀았다. 한 아이는 얼굴에 숯검정을 칠하고 모닥불 위에서 빵을 굽는 데 한창이었다. 또 다른 아이는 대형 고무 타이어 위를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균형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영국 내 첫 번째 숲 학교는 1994년 브리지워터대에 설립됐다. 교육 전공자들이 자연과의 교감, 친구 간 소통, 상상력 증대 등을 통해 어린이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 시작했다. 2000년대부터는 영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대학과 연계해 관할 내 숲 학교를 적극 도입했다. 현재 영국 내 숲 학교는 종류와 방식이 다양하지만 주로 방과후 수업 같은 개념으로, 일주일에 주기적으로 참여하는 보조 수업 형태가 많다. 영국에서 가장 큰 숲 학교 교사 민간단체인 숲학교협회(FSA)가 공인한 숲 교육 제공기관은 66곳이다. 등록된 교사 수만 지난해 기준 1400여 명에 달한다. 숲 학교 관계자들은 부분적으로 숲 교육을 제공하는 곳까지 포함하면 영국 전역에 숲 학교가 수백 곳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숲 학교에서 만난 영국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기존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3년 전 숲 학교에 처음 온 덩컨 레이시 군(16)은 대인기피가 심해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쓰고 마스크와 장갑을 낀 채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숲 학교에 온 뒤로 달라졌다. 그는 각종 도구에 관심을 가지더니 나무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닭 횃대, 새 모이함, 의자까지. 스스로 만든 작품이 쌓일수록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었다. 지금은 숲 학교의 모든 구성원과 대화하고 다른 아이들을 도울 정도로 성장했다. 농부가 되겠다는 장래 희망도 생겼다. 덩컨의 어머니 멜리사 레이시 씨는 “숲 학교에서 배운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곳 학생 중에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치료한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 영국에 녹아든 숲의 ‘소프트웨어’

숲 학교의 효능은 도심 지역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 최근 런던에선 5세 이하 아이들에게 전일 야외 교육을 실시하는 숲 학교도 생기기 시작했다. 런던에서 주 5일, 풀타임으로 숲 학교 ‘포리스트 그로브 해크니’를 운영하는 리지 해세이 씨는 “아이들이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을 이해하길 원하는 부모가 늘고 있어 도시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숲 학교 ‘킨다 에듀케이션’을 운영하는 멜 해리슨 씨는 “숲 학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역사회와 자연과의 재연결”이라며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키우는 출발점이 숲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산림위원회 산하 포리스트 리서치의 설문조사(2023년)에 따르면 영국인의 74%가 “최근 몇 년간 숲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중 51%는 “숲에 있을 때 느끼는 행복감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늘었다”고 답변했다. 응답자의 22%는 지난 1년 새 숲 방문 빈도가 더 늘었다고 답했다.

영국건강보험(NHS)은 정신적, 육체적 처방의 하나로 숲 교육, 원예 등을 포함한 각종 녹색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녹색활동의 경제적 혜택을 분석한 결과 참가자 82명이 1년 동안 의료비용을 3만8646파운드(약 6673만 원) 절감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보고서에 따르면 조경 원예 등 녹색산업이 영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30년 418억 파운드(약 71조5820억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관련된 일자리 수는 76만3400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영국#숲 학교#치유의 캔버스#영국 산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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