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황에도 병원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23일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 장기이식센터에서 만난 윤명희 부산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56)는 “꺼져 가는 생명에 불을 지피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전공의 사직 등에 따른 의료 공백이 2달 넘게 이어지면서 주요 의과대학 교수들이 피로 누적을 호소하며 주 1회 휴진 등을 검토 중이지만 윤 교수는 “흔들리지 않고 환자를 돌볼 것”이라는 뜻을 재차 강조했다.
‘국내 여성 1호 간담췌외과 전문의’로 활약하고 있는 윤 교수는 2016년부터 부산대병원에 근무하며 약 100회에 걸쳐 뇌사자의 장기이식 수술에 참여했다. 올 초부터 장기이식센터장을 맡고 있다. 그는 19일 발생한 뇌사자의 심장과 콩팥 등을 3명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22일까지 진행하고 23일 오전 일반 환자의 수술을 집도한 뒤 기자를 만났다. 그는 “2박 3일 동안 줄곧 병원에 있었다”며 “뇌사자의 장기를 이식하는 수술은 매우 까다로우며 이를 총괄하기 위해서는 긴장하며 현장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의료 공백 사태가 두 달 동안 이어지면서 긴장감은 더 커진 상태라고 했다. 윤 교수는 “이식 수술에 참여해야 하는 과별 전문의에게 협진을 요청하고 수술 차트를 관리하는 임무 등은 통상 전공의가 맡았다. 이들이 현장에 없는 까닭에 전문의는 더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대병원에서는 매년 20여 건의 장기이식 수술이 진행되고 있다. 윤 교수는 “뇌사자는 예고없이 갑작스럽게 발생한다. 3만 명이 넘는 국내 환자가 뇌사자의 장기를 이식받기 위해 애타게 기다리는 만큼 우리는 그 어떤 상황에도 병원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명의 뇌사자의 장기기증으로 최소 3명이 새 생명을 얻는다. 통상 1명의 뇌사자의 장기 8개를 이식할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현장을 떠나겠느냐”고 반문했다.
장기이식 절차는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이 뇌사자의 보호자로부터 장기기증을 동의받은 뒤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이때부터 온 병원은 뇌사자 관리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고 했다. 이식이 끝날 때까지 뇌사자의 심폐 기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혈액이 장기에 공급되지 못하면 간과 콩팥 등이 손상돼 이식 수술이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신경외과와 마취과, 영상의학과 등에서 약 15명의 전문의가 투입되고, 전공의를 비롯해 간호사 등을 모두 합치면 60명의 의료진이 이식 수술에 참여한다고 했다. 윤 교수는 “뇌사자의 심장이 뛰지 않으면 병원에 응급 상황을 알리는 ‘코드블루’ 사인이 방송된다. 19일 뇌사자에게 이런 상황이 발생해 흉부외과 전문의가 급하게 달려와 문제를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의료계를 이끌어야 하는 전공의를 향한 위로와 응원의 말도 잊지 않았다. 윤 교수는 “어렵게 의대에 입학한 이들이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며 수업을 듣지 못하고 밖에서 방황하고 있다”며 눈물을 찍어낸 뒤 “갈등을 풀 수 있는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데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윤 교수는 “간과 심장 등을 이식할 수 있는 뛰어난 역량을 갖춘 외과 의사들이 다른 지역에서도 활동 중이라는 점을 지역민이 꼭 알아주면 좋겠다”며 “수술을 위해 수도권으로만 몰리는 상황이 줄어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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