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 “사직서 제출 한달 지나 효력”
정부 “수리 안해… 결근은 무책임”
일부선 징계 불사-법정다툼 예고
의대 입학정원 확대에 반발해 지난달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했던 의대 교수들이 25일부터 순차적으로 병원을 이탈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수리 예정인 사직서는 없다”며 실제로 병원을 떠나는 의대 교수들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방재승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24일 기자회견에서 “(사직은) 교수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라며 다른 비대위 지도부 교수 3명과 함께 다음 달 1일 병원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방 위원장은 “(민법에 따라) 개별 교수 사직서 제출일로부터 30일이 지난 시점부터 개인의 선택에 따라 사직을 실행할 것”이라고도 했다.
서울아산병원 내과 교수인 최창민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위원장도 “25일 외래진료가 마지막이 될 것이며 환자를 더 보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곳곳에서 병원 이탈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교수들은 민법에 따르면 사직서 제출 후 1개월이 지나는 25일부터 사직의 효력이 발생하는 만큼 병원을 떠나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국립대나 사립대 총장이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으면 사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직을 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사표 냈으니 출근 안 한다’ 이렇게 하실 무책임한 교수님이 현실에선 많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개적으로 사직 의사를 밝힌 교수들은 무단결근으로 징계를 받는 것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배우경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 언론대응팀장은 “사직 효력이 문제가 된다면 법정에 가서 다퉈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들 “오늘이 마지막 외래진료” 강경… 정부 “사직접수 80건뿐”
[의료혼란 장기화] 의대교수들 오늘부터 사직 강경파 “허풍 아냐… 진짜 떠날것” 일부는 “교수직 던지되 진료 계속”… 교수들 사이서도 행보 갈릴 듯
24일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에 따르면 사직서를 제출한 의대 교수는 전국적으로 3000∼4000명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항의한다’는 취지로 사직서를 냈을 뿐 실제로 병원을 떠날 생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직 외에는 정부를 압박할 수단이 없다”며 강경파를 중심으로 병원을 떠나겠다는 교수가 속속 나타나고 있어 정부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의대 교수 한두 명만 빠져도 큰 차질”
방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와 의대생이 돌아오지 않으면 의료 붕괴는 5월부터 시작된다”며 “정부는 교수 사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뻥카(허풍)라고 매도하는데 마지막으로 우리가 한 말은 지키기 위해 병원을 떠나는 것”이라고 했다. 일촉즉발의 현 상황을 ‘침몰하는 타이태닉호’에 비유하기도 했다.
방 위원장처럼 공개적으로 ‘병원을 떠나겠다’고 밝힌 교수는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정부에 대한 항의의 뜻도 있겠지만 일단 숨을 돌리고 쉬기 위해 병원을 떠나는 교수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공의 공백이 10주째 이어지면서 의대 교수 상당수가 과도한 당직과 수술, 외래진료에 시달리며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직서를 낸 교수 중 일부는 “중증 환자를 떠날 순 없다”며 ‘교수직’만 포기하고 대신 임상에 남아 환자 진료는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지방 의대 교수협 비대위원장은 “이번 주까지만 진료하려고 환자를 정리했다”면서도 “다음 주부터는 당직만 도와줄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장은 “그동안의 연구 성과 등을 모두 포기하고 병원을 떠날 교수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는 과거 사례 등을 볼 때 교수가 대거 병원을 이탈해 진료가 마비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주까지 대학본부에 접수된 의대 교수 사직서는 80건 이내”라며 “지난달 25, 26일 접수돼 주중에 한 달이 경과하는 사직서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교수 비대위 등에서 제출받은 사직서를 대학본부에 전달하지 않고 보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다만 교수들이 대학병원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보니 소수가 이탈해도 병원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있다. 대형병원이더라도 필수의료 분과 교수는 한두 명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한 서울 주요 대학병원 소속 교수는 “전공의와 달리 교수는 한두 명만 빠져도 ‘펑크’가 난다. 응급의학과 교수가 있어도 심장내과 교수가 없다면 심장마비 환자를 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 의협 “한 번도 경험 못 한 대한민국 될 것”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 비대위는 이날 “의사 정원에 대한 과학적 합리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필요 의사 수 추계에 대한 연구 출판 논문을 공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과학적 연구를 통한 충분한 근거가 마련될 때까지 의대 증원 계획을 중단하고 전공의와 의대생들도 복귀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의료계 차원에서 의사 수급에 대한 객관적·과학적 추계는 바람직하지만 입시 일정상 내년도 의대 정원을 재추계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의협) 비대위원장은 의대생과 전공의, 대학교수가 연이어 의료 현장을 떠나게 된다며 “5월이 되면 경험하지 못했던 대한민국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는 25일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첫 회의를 연다. 다만 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주요 의사단체가 불참할 전망이라 ‘반쪽짜리’ 회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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