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난당한 문화재를 사서 17년간 창고에 숨겨온 전직 박물관장에게 징역형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부장판사 한성진)는 23일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권모 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권 씨는 199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후반까지 서울에서 한 사립박물관을 운영해왔다. 권 씨는 2000년 11월 상인을 통해 그림 한 점을 600만 원에 사들였는데, 이 그림은 같은 해 10월 전남 구례군의 천은사 도계암에서 도난당한 ‘신중도(神衆圖)’였다. 권 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박물관 인근 무허가 주택을 연구실로 변경 등록한 뒤 이곳에 2017년 5월까지 신중도를 보관해왔다.
신중도는 1987년에 제작된 국가유산청 지정 일반 동산문화재다. 화폭이 가로 192cm, 세로 126cm로, 제석천 위태천을 역삼각형으로 배치해 역사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아 왔다. 권 씨는 2014년과 2016년에 각각 도난 문화재 사건에 연루돼 수사를 받았는데, 당시엔 신중도가 발견되지 않았다. 나중에 수사기관에 적발돼 신중도는 조계종에 환부됐다.
권 씨는 재판에서 “신중도가 도난 문화재인 줄 모르고 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권 씨가 관련 문화재에 해박한 지식과 전문적 식견을 갖춘 만큼 이 주장이 신빙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특히 그림을 구매할 당시 문화재의 출처를 알 수 있는 부분만 의도적으로 훼손된 상태였음에도 취득 및 판매 경위에 대해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현금이나 수표를 사용해 구매한 점에 주목했다.
권 씨는 해당 그림을 은닉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박물관의 창고에 정상적으로 보관한 것일 뿐 은닉한 것은 아니었다”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해당 시설에 문화재 손상을 막기 위한 별도 설비가 없었던 만큼, 권 씨가 해당 문화재를 발견하기 어렵게 숨겼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문화재 절도 범행을 적극적으로 유인하거나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판시했다. 권 씨는 1심 판단에 불복해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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